고대 신화에는 간혹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와 사자의 귀를 가진 동물이 등장한다. 마치 사자와 독수리를 섞어 놓은 듯한 이 동물은 서양의 신화와 전설 에서 '그리폰'이라고 불리운다. 그런데 이 동물은 어느날 갑자기 한 사람의 상상에 의해 탄생한 신화 속의 동물이 아니다. 이 신화적 동물이  인간의 상상 속에 들어 온 것은 서구 문명이 시작된 것보다 훨씬 오래 전 일이다. 그리폰은 인류 문명의 발생과 거의 동시에 탄생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신화 속의 피조물이다. 본 글은 그리폰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리폰의 기원은 고대 근동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 : 24)


일하는 사람 중에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열 폭 양장으로 성막을 지었으니 곧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들을 무늬 놓아 짜서 지은 것이라   (출애굽기 36: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을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몸둥이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행하더라.    (에스겔 10:18~ 22)


위의 글은 성서의 본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본문에는 공통적으로 '그룹'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그룹'은 여기 소개된, 창세기, 출애굽기, 에스겔서 이외에도 구약 성서에 총 90번 정도 등장한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생명체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정확히 어떤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쉽게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룹'은 신화 속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수 많은 동양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용'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듯이 고대 근동의 고대인들은  '그룹'이란 신화적 생명체에 대해 많은 상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성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그룹' 이란 생명체는 고대 근동에서 처음 만들어져 후에 유대교를 바탕으로 기독교 문명을 이룩한 서구 사회에도 영향을 미♡ 것으로 추측된다. 동양에서 용의 존재가 매우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서양은 '그룹'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룹'은 어떤 생명체일까?


그룹은 고대 근동 지역의 신화 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히 앗시리아에서는 그룹(k'rub)으로 히브리에서는 케룹(cherub : 혹은 케루빔으로도 불리워진다)으로 불리워 졌다. 구약 성서는 '그룹'(이후 본문부터는 케룹이라 하겠다.)이란 존재에 대해 매우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특히 케룹은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과 제의와 관련하여 빈번히 등장한다. 고대 히브리 신화가 전하는 '케룹'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케루빔은 9품계의 천사계급 중에 두 번째로 강력한 집단이다. 일반적으로 케루빔은 4개의 날개와 4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 4개의 머리는 4가지 중요한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린이 그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케루빔은 케룹이란 말의 복수형이다. 그리고 케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지식 혹은 중재자란 의미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화에서 세라핌 다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운 존재로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주를 운행할 때마다 하나님의 수레 혹은 병거를 끄는 존재로 나타난다. 창세기에서 케루빔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추방당한 후 심판의 날까지 에덴을 지키는 임무를 임명받았다."


케룹은 4개의 머리와 4개의 날개를 가진 것으로 전해지지 때문에 나타나는 이미지도 매우 변화무쌍하다. 케룹은 인간, 사자, 소, 그리고 독수리의 형상을 모두 합쳐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리는 두 개 혹은 네 개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케룹의 이미지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신성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예를 들면 제단, 성전의 벽, 휘장 등등)에 이 케룹을 만들거나 새겨 넣었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야웨 하나님의 계명을 새긴 돌판을 보관했던 법궤에 바로 이 케룹이 장식되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또한 성막,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곳곳에 케룹의 형상을 만들거나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케룹을 신성시했다고 해서 케룹 자체를 숭배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케룹을 야웨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상징적 이미지로써만 신성시했다(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리아데의 성과 속의 개념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후에 기회가 되면 성과 속에 관한 글을 올릴까 생각 중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케룹을 야웨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의 상징으로 받아 들였다. 시편 18:10에서 "그룹을 타고 날으시며..."라는 구절은 야웨 하나님의 현현의 표현인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케룹이란 신화적 피조물을 야웨 하나님의 현현과 긴밀히 관련시켰다. 케룹을 신성시한 것은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종교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케룹을 신성시하는 현상은 당시 고대 근동 사회의 보편화된 종교 현상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앗시리아인들도 케룹을 신성시했다는 토판 기록이 발견되었고, 이들도 자신이 만든 벽화나 그림들에 케룹의 형상을 만들어 넣은 사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고학자들은 앗시리아인들이 최초로 케룹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케룹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그림에서도 케룹과 유사한 동물이 자주 묘사된다. 그런데 케룹의 이미지는 주로 히브리인들이 야웨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이유는 고대 페르시아는 케룹을 히브리인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사실로 반증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케룹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신의 현현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때가지만 하더라도 케룹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케룹이 때로는 동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되는 초자연적 존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케룹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는 기독교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서구 문명에도 전해 졌다.  흔히 서구의 기독교 성화에서 케룹이 아기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사실 이것은 원래의 케룹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고대 근동의 케룹은 서양의 그리폰이란 신화 속 동물에서 더 잘 발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고대 근동의 케룹의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를 거쳐 서구 문명에 널리 유포되어, 변형을 거듭하면서 그리폰이란 상징적 동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구 문명은 고대 근동의 케룹을 그리폰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이 피조물을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해 나갔는데 이것이 바로 신화 속 사상의동물 즉, 그리폰이다. 서구 문명에서 그리폰은 지혜와 용기의 상징이었다.

 

지혜와 용기의 상징 그리폰


네개의 머리와 네개의 날개를 가진 케룹의 이미지는 서양의 그리폰이란 상상의 동물로 발전했다. 그리폰은 독수리의 머리와 앞발 그리고 날개, 사자의 뒷발과 꼬리를 갖고 있는 동물로 묘사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자의 귀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서구인은 이 동물을 강한 힘과 철두철미한 감시자의 상징으로 믿었다. 그리스에서 그리폰은 엄중한 감시자의 상징이었다. 아폴로는 이 동물을 타고 다닌 것으로 전해지며, 북극에 사는 북극인의 황금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의 사냥개"로도 묘사된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최고 신이 케룹을 타고 우주를 운행하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또 다른 신화에서 그리폰은 태양신의 재물이나 엄청난 하늘의 보물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폰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 끝까지 날아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 동물은 오만함과 자만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을 함정에 빠뜨리는 사악한 악마적인 모습을 가진 것으로도 전해지지만, 나중에는(단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특징(신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그리폰은 하늘과 땅을 모두 지배하는 피조물이란 속성이 강하게 부각되였다. 특히, 사자와 독수리의 모습이 합쳐져 태양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보다 더 긍정적인 이미지로 강조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그리폰은 사탄의 모습을 한 악마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뱀과 바실리크스에 맞서 싸우는 대적자로 등장한다. 이처럼 그리폰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서구 문명 사회에 신화나 전설 속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도 이 동물이 등장한다.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머리, 긴 귀, 그리고 독수리의 발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 그리폰은 흔히 하늘과 땅을 모두 지배하는 상징적 중요성 때문에 지성과 힘의 상징으로써 방패나 투구 혹은 고대 왕들의 반지 같은 곳의 문장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동양의 신화 속에서는 용이 있다면, 서양은 신화 속에는 그리폰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은 동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