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생 로드니 알칼라의 창고에서 발견된 사진들과 범죄 연표

아이큐 170의 UCLA를 다니다 뉴욕대를 졸업한 천재 명문대생 로드니 알칼라의 창고에서 발견된 사진들과 범죄 연표

1941년 2월 13일 로드니 알칼라의 형 라올 알칼라가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에서 출생

1942년 로드니 알칼라의 누나 매리 테레세 알칼라가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에서 출생

1943년 8월 23일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에서 라오 알칼라-부커와 아나 마리아 구티에레즈 사이에서 로드리고 자퀘스(제임스) 알칼라-부커가 출생했다. 로드리고 자퀘스 알칼라-부커가 바로 130명 이상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다니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아이큐 170의 천재 연쇄 살인사 로드니 알칼라다.

1947년 4월 24일 로드니 알칼라의 여동생 마리아 크리스틴 알칼라가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에서 출생해 로드니 알칼라는 지 부모들, 지 외할매, 2명의 여자형제들, 1명의 남자 형제와 같이 살았다.

1948년 로드니 알칼라는 유치원 졸업후 성 조셉 예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알칼라”란 성은 “요새, 성채”등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로드니 알칼라의 성을 봤을때 로드니 알칼라의 조상은 멕시코國이나 콜롬비아國같은 중남미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간 애.

1951년 병으로 앓던 로드니 알칼라의 외할매가 자기 고향인 멕시코에서 남은 여생을 살고 싶다 말해 알칼라 가족은 멕시코로 이민을 가게되고 로드니 알칼라는 멕시코에 있는 예수쟁이새끼들이 처 만든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를 댕겼다. 로드니 알칼라의 외할매는 멕시코에 간지 얼마 안되 서거했다.

1954년 알칼라 가족은 약 3년간 지들 부모 고향인 멕시코國에서 살다 다시 미국으로 이민가 이번엔 캘리포니아國 로스 엔젤레스市 외곽에 자리 잡았다. 로드니 알칼라는 성 알폰서스 예수 중학교에 약 2년간 댕겼다.

1956년 성 알폰서스 예수 중학교를 졸업한 로드니 알칼라는 고등학교도 다시 예수 고등학교인 매리의 심장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거의 계속 예수새끼들이 처만든 학교만 댕긴 로드니 알칼라는 스스로 자기는 이미 성령충만하다 생각해 일반 학교에 가고 싶단 뜻을 피력해 나중에 일반 고등학교인 몬테벨로 고등학교로 전학갔다.

1960년 몬테벨로 고등학교 졸업

아래 동영상은 로드니 알칼라가 졸업한 몬테벨로 고등학교와 그의 후배들

로스 안잘라스市 근방에 있는 로드니 알칼라의 모교 몬테벨로 고등학교(로드니 알칼라는 학창시절 인기만점 남학생 이었다 한다)

1961년 6월 19일 노스 캐롤라이나國 공수부대에 자원 입대 했다. 공수부대에서 약 4년간 미국 육군소속 행정병으로 복무하게 된다.

82공수사단 부대마크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로드니 알칼라의 쫄따구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약 4년간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약 4년간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약 4년간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약 4년간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후임들
로드니 알칼라가 약 4년간 복무한 노쓰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82공수사단 부대마크

1962년 1월 8일 로드니 알칼라의 애비새끼 라오 알칼라-부커(스페인, 포르투칼등 히스페닉 새끼들 국가들 성을 보면 성이 2개가 붙어 있는데 알칼라-부커 같은 경우 “알칼라”는 로드니 알칼라 친 할배 성이고 “부커”는 로드니 알칼라의 애미 성일낀데 보통 히스패닉 집단 처럼 성이 2개 붙은 경우 부계인 앞에 성을 주로 쓴다. 뒤의 애미 성을 쓰는 새끼들도 혹가다 있긴 있다)가 캘리포니아國 툴레어郡에서 갑자기 죽었다. 알칼라 가족 모두 라오 알칼라-부커 장례식에 참가 했다.

1962년 1월 8일 군복무 중이던 로드니 알칼라가 갑자기 캘리포니아國에 살고 있는 지 애미년 집에 나타나 자기는 노스 캐롤라이나國에 있는 포트 브랙 제82공수사단 부대에서 허락없이 무단 이탈해 수천km를 차량들을 얻어 타고 애미 니한테 왔다란 말을 했다.

1964년 초 미육군소속 제 82 공수부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중이던 로드니 알칼라는 신경쇠약으로 의가사 제대한다. 로드니 알칼라는 군대 신경검사에서 심각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진단 받았다.

1968년 9월 25일 캘리포니아國 로스 엔젤레스市 자기가 살던 연립 주택에 8살짜리 탈리 샤피로란 백인 여아를 데리고와 강간을 때린 뒤 8살짜릴 살해하려고 했지만 우연히 로드니 알칼라가 8살 탈리 샤피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을 본 애가 짭새소에 고자질 때렸고 로스 안잘라스市 짭새소 짜바리새끼가 현장에 출동했다. 로스 안젤레스市 짭새가 출동했지만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 집에서 튀꼇고 강제로 문을 까고 기들어간 로스 안잘라스市 짭새는 로드니 알칼라 집안에서 강간당한 상태로 다리가 벌려져 있고 피가 흥건한 상태로 목에 쇠봉이 걸쳐저 의식을 잃은 상태의 8살 탈리 샤피로를 발견했다. 탈리 샤피로는 살아 났고 저 사건이 일어나고 몇개월 안되 탈리 샤피로의 부모들은 미국에선 애를 키우기 겁난다며 멕시코로 갔다.

탈리 샤피로

1968년 9월 LA짭새는 주변 동네 탐문과 로드니 알칼라의 집에서 발견된 로스 앤젤레스市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학생증으로 8살짜릴 강간한 강간범으로 명문 UCLA대학교 재학생 로드니 알칼라가 지목됐다. 당시 수사 짭새로 일하던 스티브 호델은 8살 백인 여아 강간범으로 로드니 알칼라가 주요용의자 였다 말했다.

로드니 알칼라를 배출한 깜둥이 똥냥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國에 위해 있는 미국인 학생들은 공짜고 외국인 같은 경우는 등록금 2배에 돈만주면 개새끼 소새끼 십새끼 다 졸업시켜 주기로 유명해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는 UCLA대학교 동영상

여기 나오는 스티브 호델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갔던 아이큐 186으로 블랙달리아 사건 주요 용의자인 할리우드 여자배우 낙태 전문 천재 유태인 의사 “조지 호델“의 아들이 맞다. 스티브 호델이 자기 집안에서 지 애비 조지 호델의 유품이던 사진속에서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몸 사진만 나온 나체상태인 여자의 몸과 블랙 달리아 “엘리자베쓰 쇼트”의 신체특징이 비슷하다 생각하고 짭새인 스티브 호델이 조사해본 결과 지 애비새끼인 조지 호델이 블랙 달리아 사건 범인이 틀림 없다 주장한 것이다. 조지 호델은 블랙 달리아 사건 수사때 당시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자 “아시아”로 튀꼇다. 조지 호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는 애 없다만 아마도 변태 소아 강간 성폭행범들이 판치는 유태인 할리우드영화판 고위 관계자새끼들이 아인슈타인보다 아이큐가 1 더 높았던 천재 조지 호델을 “아시아”로 도피시켰으니 저 새끼들만 알것지.

아래 동영상은 개천하의 폐륜아 호로새끼 전 로스엔젤레스市 짭새새끼 스티브 호델 폐륜아새끼가 짭새새끼 주제에 음악 신동이자 부자들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개돼지새끼들의 위인인 의사 아버지 조지 호델이 블랙달리아 살인마라고 쥐새끼 처럼 뒤에서 흉을 보는 동영상으로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흰털보새끼가 자기 아버지를 흉보는 개천하의 폐륜아 호로년 스티브 호델새끼다.

1968년 9월 UCLA 재학중이던 로드니 알칼라는 캘리포니아國에서 뉴욕國으로 튀껴 뉴욕市에 있는 뉴욕 대학교 예술학부에 “존 버거”란 가명으로 입학신청을 하고 뉴욕 대학교는 “존 버거”의 입학신청을 받아들였다.

1971년 6월 존 버거(로드니 알칼라)는 뉴욕대 재학중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학생이었고 뉴욕대를 졸업한 후 뉴 샘프셔國 “조지 밀스”읍에 있는 영화, 드라마 야외학교에서 여학생들 상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971년 6월 뉴욕市 맨하탄(또는 맨해튼)口에서 “존 버거”란 가명으로 주로 어린 여자들을 촬영하는 사진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로 여심녹이는 명문대 졸업한 천재 사진사 로드니 알칼라

1971년 6월 24일 뉴욕市 맨하탄區 요크빌洞에 있던 “존 버거(로드니 알칼라)”의 연립주택에서 코넬리아 “미셀” 크릴리의 시체가 발견됐다.

코넬리아 미셀 크릴리

1971년 7월 LA짭새 스티브 호델을 접선한 FBI는 뉴욕 맨하탄區에서 시체로 발견된 코넬리아 크릴리와 1968년 LA에서 8살짜리가 강간당한 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FBI는 10대 지명수배자에 로드니 알칼라(존 버거)를 등록했다.

1971년 8월 뉴 햄프셔國 조지 밀스邑 영화드라마 야외 학교 여학생 2명은 FBI 10대 지명 수배사 목록에 등록되있던 존 버거(로드니 알칼라)가 자기 야외 연기학교 상담사 존 버거와 동일한 애란걸 알아보고 지역 짜바리所에 고자질 깟다. 조지 밀스邑 영화 드라마 촬영장 대통령은 FBI 10대 지명 수배자 목록에 등록돼 있는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 촬영장에서 “존 버거”란 이름으로 여학생들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애라 지역 짜바리에게 확인시켜줬고 지역 짭새는 FBI에 다시 밀고 깟다.

1971년 FBI가 배포한 로드니 제임스(자퀘스) 알칼라 전단지

1971년 8월 11일 뉴햄프셔國 조지 밀스邑 촬영장에 FBI업소 애들이 출현해 평화로이 일하고 있던 존 버거(로드니 알칼라)를 체포한 후 캘리포니아國 로스 엔젤레스市로 송환했다.

1971년 8월 ~ 1972년 5월 로드니 알칼라는 1968년 당시 8살이던 탈리 샤피로를 강간 때린 후 목을 졸라 살해하려한 사건과 관련해 탈리 샤피로의 부모들은 1968년 사건 이후 미국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 생각해 고향인 멕시코로 다시 가서 살았었다.

탈리 샤피로

탈리 샤피로의 부모들은 LA짭새들을 매우 믿지 못해 법판쇼판에서 증언을 거부했다. 검새끼들은 “희생자”가 멕시코로가 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 로드니 알칼라와 합의를 하는게 최선이었고 로드니 알칼라는 검새끼와 합의하에 유죄를 인정해 강간, 살인미수가 아닌 사건 당시 8살 희생자 탈리 샤피로의 부모들이 딸의 법정진술을 거부하는 상태에서 “아동 성추행”혐의로만 검새끼와 합의하에 유죄를 받았다.

1972년 5월 19일 멕시코에 있는 탈리 샤피로의 가족들이 미국 법판쇼판을 믿을 수 없다 주장하며 법정 진술을 거부하는 상태에서 판새끼는 로드니 알칼라에게 특정 기간이 정해진 공직기간이 아닌 교도소에서 가석방이 가능한 1~10년 사이 공직자 생활을 할 것을 로드니 알칼라에게 선사했다.

1974년 8월 교도소 정신분석 학자가 로드니 알칼라는 교도소에서 공직자로 생활중 상태가 상당히 호전됐단 소견서를 제출한 관계로 로드니 알칼라는 공직자 생활 약 35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LA시에 있는 교도소에서 제대했다. 교도소에서 제대한 로드니 알칼라는 성범죄자로 등록됐다.

1974년 8월 ~1974년 9월 한 사진 회사에 사진사로 채용돼 로스 엔젤레스郡을 돌아다니며 여러 상점들의 사진들을 촬영했다.

환한 미소로 여심녹이는 명문대 졸업한 천재 사진사 로드니 알칼라

1974년 10월 13일 캘리포니아國 허팅튼해수욕장에서 13살짜리 백인 여아를 납치해 13살짜리에게 강제로 대마초를 피우게 하다 지나가던 짭새가 대마초 냄새를 맡고 로드니 알칼라를 조사하기 위해 체포했다.

허팅튼 해수욕장市에 있는 허팅튼 해수욕장
허팅튼 해수욕장市에 있는 허팅튼 해수욕장
허팅튼 해수욕장市에 있는 허팅튼 해수욕장
허팅튼 해수욕장市에 있는 허팅튼 해수욕장

1974년 가을 로드니 알칼라는 13살짜리에게 대마초를 강매한 혐의, 13살 납치 혐의, 보호감찰 위반등으로 고발됐다.

1974년 10월 26일 보호감찰 위반,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제공한 혐의로만 유죄가 선고되고 13살짜리 납치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1974년 12월 ~ 1977년 6월 약 2년 6개월간 캘리포니아國 치노市에 있는 공직자 숙소에서 공직생활 한다.

1977년 6월 16일 공직자 숙소해서 재활훈련을 마치고 품행이 단정해 졌단 이유로 매주 보호감찰 직원에게 보고하는 조건으로 가석방됐다.

1977년 여름 로드니 알칼라는 뉴욕에 살고 있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길 원한다 보호감찰 직원에게 말했고 보호감찰 직원은 허락한다.

1977년 7월 16일 뉴욕國 뉴욕市에서 23살 백인 여자 엘렌 제인 호버란 애가 자신은 “존 버거”란 이름의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됐다.

엘렌 제인 호버

1977년 9월 로드니 알칼라는 뉴욕時에서 로스 엔젤레스時로 돌아간 후 LA타임즈 신문지에 구직 신청했고 로스 엔젤레스 타임즈 신문지업소는 로드니 알칼라를 신문지 자판 배열하는 일을 하는 타이프세터로 채용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근무했던 유태 빨갱이 유언비어 개구라 날조 소설 보도 전문 신문지 LA타임즈 신문지 업소 건물

1977년 11월 10일 로스엔젤레스市 할리우드 힐즈洞에서 18살짜리 백인 여자 질 바컴의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엔 강간당한 흔적이 있었고 사망 원인은 용의자가 둔기로 질 바컴을 가격한 후 바지로 질 바컴의 목을 졸라 질 바컴이 죽은 걸로 추정됐다.

1977년 12월 14일 FBI는 뉴욕시에서 실종된 엘렌 제인 호버가 “존 버거”란 이름의 남자를 만나러 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됐다 로스 엔젤레스 짭새한테 고자질 깟고 로스 엔젤레스市 짭새는 로드니 알칼라가 “존 버거”란 별명을 사용한적 있으므로 로드니 알칼라를 조사하지만 엘렌 제인 호버가 만나러 갔다는 “존 버거”란 남자가 로드니 알칼라란 증거도 없고 엘렌 호버의 행방조차 모르니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라 로드니 알칼라를 풀어준다.

1977년 12월 16일 캘리포니아國 말리부市에서 27살 백인 여자 조지아 윅스테드가 시체로 발견됐다. 조지아 윅스테드의 동료들에 따르면 그녀는 평소 일터에 갈때 동료들을 태우러 오는데 그날은 태우러오지 않아 조지아 윅스테드에게 뭔가 일이 생긴건 아닐까 하고 짭새들에게 고자질 깟다 말했다. 조지아 윅스테드는 11월 시체로 발견된 질 바컴과 마찬가지로 강간당했고 목졸려 살해 당했다.

조지아 윅스테드
질 바컴

1978년 3월 당시 로스 엔젤레스市 할리우드 힐즈洞 근방에서 10여명의 여자들이 살해당하는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짭새는 “힐사이드 스트랭글러 체포단”을 조직해 주요 용의자를 조사하고 있었다. 로드니 알칼라도 성범죄자로 등록된 애였기 때문에 힐사이드 스트랭글러 체포단은 알칼라를 조사하기 위해 그의 집에 갔다가 집안에서 대마초를 발견했다. 저 일로 로드니 알칼라는 교도소 공직자 생활을 잠깐 하게 된다.

사촌 지간으로 10명 이상의 여자들을 강간 살해 때린 케네쓰 비안키와 안젤로 부오노 강간브라더스

12살 ~ 28살 여자들 최소 10명 이상을 강간, 살해한 “힐사이드 스트랭글러”란 별명이 붙은 연쇄 살인마는 친척 사이인 케네쓰 엘레시오 비안키와 안젤로 안소니 부오노 주니어로 저 애들은 1979년 체포됐다.

1978년 6월 24일 캘리포니아國 엘 세군도市 일리노이路에 있는 주택단지 세탁장에서 신원불명의 백인여자 시체가 발견됐다.

1978년 6월 28일 캘리포니아國 산타 모니카市 살인짭새반 짭새 리차드 플라세는 “샬롯 램”이란 년이 실종됐단 고자질을 받았다.

샬롯 램

1978년 6월 1977년 뉴욕에서 7월 16일 실종신고된 엘렌 제인 호버의 시체가 뉴욕國 웨스트체스터郡 타리타운邑 북쪽 지역에서 발견됐다.

엘렌 제인 호버

뉴욕짭새所 실종자 전담所는 로드니 알칼라의 친구들로 부터 엘렌 제인 호버의 시체가 발견된 타리타운읍은 사진을 찍기 위해 로드니 알칼라가 여자들을 자주 데려간 지역이라 말하는 걸 들었다.

1978년 9월 6월 24일 엘 세군도市 주택단지 세탁장에서 발견된 신원 불명의 백인 여자는 6월 28일 실종신고 고자질이 들어온 “샬롯 램”으로 확인됐다.

샬롯 램

1978년 9월 13일 LA타임즈에서 일하고 있던 로드니 알칼라는 주위 동료들의 권유로 “데이팅 게임 쇼”란 짝짓기 테레비 방송에 출연해 다른 남자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혼자 독신녀로 나온 셰릴 브래드쇼에게 남자 1등으로 선택받았다.

1979년 2월 13일 로드니 알칼라는 차를 타고 가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15살 짜리 백인 여아(모니퀘 호이트)를 발견하고 태운다. 저 후 로드니 알칼라는 모니퀘 호이트에게 자긴 사진사고 니 사진을 찍어 사진대회에 출품하고 싶다 말한다. 저날 저녁 로드니 알칼라와 15살짜리 백인 여아는 같이 밤을 보냈다.

1979년 2월 14일 로드니 알칼라는 날이 밝자 15살짜리 백인 여아 모니퀘 호이트를 태우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모니케 호이트의 나체 사진을 촬영 한 후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강간했다. 강간 당한 모이퀘 호이트는 최대한 로드니 알칼라를 친근하게 대하다 로드니 알칼라가 주유소 변소에 들어간 사이 튀꼈다.

1979년 2월 14일 도망친 15살짜리 여아는 짭새한테 고자질까러 갔고 짭새들이 보여준 여러명의 용의자들 사진목록에서 바로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를 강간한 범인이라 지목했다. 저 후 로드니 알칼라는 체포됐고 15살짜리 모니퀘 호이트를 목조르며 강간한걸 시인했다.

1979년 4월 로드니 알칼라는 LA타임즈에 2주간 휴직을 신청했다.

1979년 5월 12일 로드니 알칼라는 LA타임즈 신문지소에서 사직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근무했던 유태 빨갱이 유언비어 개구라 날조 소설 보도 전문 신문지 LA타임즈 신문지 업소 건물

1979년 6월 캘리포니아國 몽테리 파크市에 살고 있던 17살짜리 린다 L에게 나체로 찍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17살짜리 린다 L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큐 170으로 뉴욕 명문대를 졸업한 로드니 알칼라는 린다 L에게 자기는 아이큐가 높은 애들 모임인 “멘사” 회원이라 말했다.

1979년 6월 14일 캘리포니아國 LA市 근방에 있는 버뱅크市에서 21살 백인 여자 질 파렌튜가 자기 집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질 매리 파렌튜

1979년 6월 20일 로드니 알칼라는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해수욕장市 허팅튼 해수욕장에서 본 12살짜리 백인 로빈 샘소와 로빈 샘소의 친구 브리짓에게가 자전거를 타고 있던 12살짜리 백인 여아 로빈 샘소에게 잡지 모델을 해보는건 어떻겠냐며 사진을 찍고 싶다 말한다. 로빈 샘소는 로드니 알칼라의 제안을 거부했고 로드니 알칼라는 자리에서 떠난다. 로빈 샘소는 발레학원에 가기 위해 브리짓과 헤어졌다.

로빈 크리스틴 샘소

1979년 6월 20일 20살짜리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는 일을 하기 위해 소방소로 차를 몰고 가던 중 검은 머리를 한 남자가 어린 금발 백인 여아를 끌고 숲속으로 향하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짭새한테 고자질까진 않았다.

1979년 6월 20일 로빈 샘소가 실종신고 됐고 저녁 11시 5분 실종된 12살 로빈 샘소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國 전역에 로빈 샘소의 행방을 묻는 방송이 방송됐다.

1979년 6월 21일 몽타주 전문가 매릴린 드로즈는 6월 20일 로빈 샘소와 같이 있었던 로빈 샘소의 친구 “브리짓”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자기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 말한 곱슬머리를한 남자의 몽타주를 그렸다.

몽타주 전문가 매릴린 드로즈
매릴린 드로즈가 당시 로빈 샘소의 친구 “브리짓”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린 카메라를 들고 있던 곱슬머리를 한 남자의 몽타주
1979년 당시 로드니 알칼라 사진

1979년 6월 21일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 차 내부 매트를 전부 교체한 후 쓰던 매트는 휘발유를 부어 불태웠다.

1979년 6월 22일 6월 20일 오후 5시경 허팅튼 해수욕장에서 로빈 샘소와 함께 있다 곱슬머리를한 남자가 접근해 자기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 말한적 있다 말한 로빈 샘소의 친구 “브리짓”의 묘사를 바탕으로 매릴린 드로즈가 그린 검은색 파마 머리를 한 남자의 몽타주가 뉴스에 방송됐다.

1979년 6월 24일 선천적인 곱슬이던 로드니 알칼라는 화학약품을 사용해 직모로 만든다.

1979년 6월 25일 6월 20일 검은색 곱슬머리를 한 남자가 백인 여아를 끌고가는 장면을 목격했던 20살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는 다시 그장소로가서 주위를 살펴보다 시체를 발견했지만 또 다시 짭새한테 고자질 까지 않았다.

1979년 6월 26일 로드니 알칼라는 곱슬머리를 직모로 만들었지만 선천적인 곱슬이라 다시 머리털이 곱슬이가 되기 시작하자 머리털을 짧게 깍는다.

1979년 6월 26일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해수욕장市 소속 체포 짭새 크레이그 로빈슨은 이 전에 8살짜리 여아(탈리 샤피로)를 강간 한 후 살해하려 한 사건이 있었단 제보를 접수 받고 저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사건당시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재학생이던 로드니 알칼라에 대해 조사했다. 크레이그 로빈슨은 12살 로빈 샘소를 납치해간 범인이 8살짜리 탈리 샤피로 사건 범인 로드니 알칼라 일수도 있다 생각하고 로빈 샘소가 실종된날 허팅턴 해수욕장에서 만났다던 곱슬머리를 한 남자와 탈리 샤피로 강간사 로드니 알칼라와 연관이 있는지 알아 보려 캘리포니아國 리버사이드市로 간다.

탈리 샤피로

1979년 6월 26일 몽타주 전문가 매릴린 드로즈가 로빈 샘슨 친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린 납치범 몽타주를 본 체포짭새 크레이그 로빈슨은 공식적으로 로빈 샘소의 주요 납치 용의자는 로드니 알칼라라 발표한다.

1979년 6월 27일 몽타주 전문가 매릴린 드로즈의 남편인 체포짭새 아트 드로즈는 우연찮게 1978년 9월 13일 방송됐었던 “데이팅 게임 쇼” 짝짓기 프로그램 재방송을 봤고 저 방송에 나온 뉴욕대를 졸업하고 LA타임즈 신문지소에서 일하는 로드니 알칼라와 마누라 매릴린 드로즈가 그린 로빈 샘소 납치 용의자와 닮았단걸 발견하고 방송국에 짝짓기쇼 “데이팅 게임 쇼” 동영상을 구해와라고 부하 짭새를 보낸다.

1979년 6월 6월 20일 실종된 로빈 샘소가 6월 19일 해변에서 어떤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봤단 목격자들이 나타났고 로빈 샘소 실종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체포 짭새는 목격자들에게 비슷한 외형을한 6명의 사진을 보여줬다. 6월 19일 해변에서 로빈 샘소가 어떤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봤다 주장한 목격자들은 6명의 사진중 모두 로드니 알칼라의 사진을 지목했다.

1979년 6월 28일 짭새들은 로드니 알칼라가 로빈 샘소를 납치할때 자기 차량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보고 로드니 알칼라의 차량을 조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의 파란색 차를 몰고가다 짭새들이 자기집 방향으로 가는걸 목격하고 방향을 틀어 튀낀다.

1979년 6월 29일 6월 20일 곱슬머리를 한 남자가 여아를 끌고 수풀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현장 근처에서 20살짜리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와 동료 소방수 윌리암 푀프케는 산불화재 예방 작업을 하러 갔다. 산불 예방 작업중 동료 소방수 윌리암 푀프케가 사슴뼈라며 장난으로 데이나 크라파를 향해 뼈를 집어 던지자 다나 크라파는 크게 놀란다. 작업을 마친 후 데이나 크라파는 혼자 다시 현장에갔고 6월 25일 자기가 발견한 시체의 뼈가 사람뼈임을 확신하나 이번에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

1979년 7월 2일 윌리암 푀프케는 6월 29일 데이나 크라파와 작업한 현장에서 다시 산불 예방 작업을 하다 사슴뼈로 생각했던 그 뼈를 다시 살펴보다 사슴뼈가 아니라 사람뼈인걸 알아 채린다. 6월 29일 데이나 크라파를 향해 장난으로 뼈를 집어 던졌을때 데이나 크라파가 크게 놀란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된다. 데이나 크라파와는 다르게 윌리암 푀프케는 바로 짭새한테 시체를 발견했다 고자질까 짭새들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한다.

위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한 로빈 샘소의 실제 시체 사진으로 살해된지 몇일 지나지 않았지만 여름이었고 숲의 벌레들 때문에 로빈 샘소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매우 부폐한 상태였다.

1979년 7월 6일 윌리암 푀프케가 고자질까서 발견된 시체는 부검 결과 12살 전후의 여자 아이 뼈고 이빨 기록 조사결과 6월 20일 실종됐던 로빈 샘소의 시체로 확인됐다.

1979년 7월 8일 캘리포니아國에서 살고 있던 로드니 알칼라는 당시 애인이였던 엘리자베쓰 켈레어에게 경력을 더 쌓기 위해 텍사스國 달라스市로 이사를 가려한다 말한다.

당시 로드니 알칼라의 여자친구였던 엘리자베쓰 켈레어

1979년 7월 11일 알칼라는 세실 록렘과 세실 록렘의 남편이 소유하고 있던 워싱턴國 시애틀市에 있는 보관창고를 임대한다.

시애틀市에 있는 보관 창고

1979년 7월 12일 시애틀市에서 캘리포니아國 로스 안잘레스市로 돌아온 로드니 알칼라는 애인 엘리자베쓰 켈레어에게 7월 24일 텍사스國으로 이사 갈것이라 말한다. 로드니 알칼라는 엘리자베쓰 켈레어에게 자기가 워싱턴國 시애틀市에 갔다가 왔다는걸 말하지 않았다.

1979년 7월 24일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해수욕장市 짭새小 소속 짭새 론 젠킨스와 형사 크레이그 로빈슨등 여러 짭새들이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로드니 알칼라의 집과 차량을 조사했다. 짭새들은 로드니 알칼라의 집과 차량에서 12살짜리 로빈 샘소를 로드니 알칼라가 살해했었을 수도 있다는 증거를 수집했다.

로빈 크리스틴 샘소

1979년 7월 24일 로드니 알칼라의 집과 차량에서 12살 로빈 샘소를 살해했었을 수도 있단 증거를 수집한 짭새는 로드니 알칼라를 체포해 허팅턴 해수욕장市 공직자 숙소에 로드니 알칼라를 공직생활 시킨다. 로드니 알칼라의 보석금은 당시 돈으로 25만 딸라가 책정됐다.

1979년 7월 25일 결혼해 성이 바뀐 로드니 알칼라의 여동생 마리아 크리스틴(크리씨) 드 라 세르다(결혼 전 이름 마리아 크리스틴 알칼라)가 로드니 알칼라를 면담하기 위해 공직자 숙소로 왔고 짭새들은 마리아 알칼라와 로드니 알칼라 남매의 대화를 쥐새끼 처럼 몰래 도청한다. 마리아 크리스틴 드 라 세르다가 뭔가 숨기는게 있을 수 있다 생각해 허팅턴 해수욕장市 짭새소 소속 에드 맥엘레인이 드 라 세르다의 집에 차를 타고 간다.

로드니 알칼라의 애미년인 마리아 구티에레즈 알칼라와 여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틴 드 라 세르다는 이전 짭새들이 강간, 살인, 납치사건 수사를 할때 여러 차례 로드니 알칼라의 알리바이를 증언해줬었고 이번에도 로빈 샘소가 실종된날 당일 로드니 알칼라를 자기들이 봤으므로 로드니 알칼라가 로빈 샘소의 납치 살인범일리가 없다 증언한다.

1979년 7월 25일 7월 24일 로드니 알칼라의 집을 수색할때 발견된 보관창고 영수증과 관련해 허팅튼 해수욕장市 소속 짭새들은 저 보관창고 영수증에 대해 로드니 알칼라의 애미년 마리아 구티에레즈 알칼라가 뭘 알고 있는건 없는지 조사했지만 짭새들은 별다른걸 발견하지 못한다.

시애틀市에 있는 보관 창고

1979년 7월 26일 허팅튼해수욕장市 짭새 에드 맥엘레인과 체포짭새 크레이그 로빈슨은 워싱턴國 시애틀市에 있는 보관창고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시애틀市로 비행기 타고 날아 갔다.

에드 맥엘레인, 형사 로빈슨은 로드니 알칼라가 록렘부부로부터 임대한 시애틀市 보관창고에서 수시간동안 수색한 끝에 로드니 알칼라의 보관창고를 찾아내 1천 700장이 넘는 사진들과 “존 버거가 뉴욕에서”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박스등 여러개의 사진 현상전 필름이 담겨 있는 박스들과 귀걸이등등을 발견했다.

1979년 7월 28일 캘리포니아國 오렌지都 서쪽재판쇼판에서 로드니 알칼라의 재판 날짜가 잡혔다.

1979년 7월 28일 아이큐 170의 천재로 명문 뉴욕대를 졸업한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에게 고발된 납치, 14살 이하 어린이에게 외설적인 행위를 한 혐의, 살인, 강도 등의 혐의에 대해 저런 행위를 한적이 한번도 없고 자기는 결백하다 맹세한다. 로드니 알칼라는 보석신청을 할수 없는 상태로 공직생활을 하게 된다.

1979년 8월 24일 공공변호원 크리스 스트로플은 강제로 로드니 알칼라 변호원질에서 물러나고 존 바넷이 새로운 로드니 알칼라의 공공변호원으로 임명됐다.

1979년 9월 6월 20일 실종된 후 7월 2일 변사체로 짭새에게 발견된 12살 백인 여아 로빈 샘소 재판의 사전 재판쇼가 열렸다.

1979년 10월 4일 로드니 알칼라는 로빈 샘소 사건과 관련해 납치와 살인 혐의등으로 고발됐다.

1979년 10월 로드니 알칼라는 캘리포니아國 리버사이드市에서 1979년 2월 13일 히치하이킹을 하던중 로드니 알칼라의 차에 탓다 2월 14일 로드니 알칼라와 한적한 곳에서 나체사진을 찍던중 강간당하고 목졸림을 당한 15살짜리 백인 여자 아이 모니퀘 호이트는 사건과 관련해 재판쇼판에 등판할 예정이었지만 모니퀘 호이트가 정신병치료를 받고 있어 재판쇼판에 나와 증언을 할 수 없는 상태라 판단돼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캘리포니아國 리버사이드市

1980년 2월 15일 판새끼는 로드니 알칼라가 이전에 고발됐다 혐의 없이 풀려난적 있는 납치, 강간 사건들도 12살 로빈 샘소와 15살 모니퀘 호이트 재판때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1980년 3월 19일 21살이된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가 재판쇼판에 나와 “1979년 6월 20일 한 남자가 백인 금발 여자 아이를 강제로 수풀로 끌고가는걸 봤고 다음 날인 6월 21일 저녁에도 6월 20일 백인 금발 여아를 끌고간 남자를 봤다. 1979년 6월 25일엔 6월 20일 남자가 여아를 수풀로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곳에가 현장을 살펴보던중 처음 여아의 시체를 발견했다”라 말한 후 로드니 알칼라가 6월 20일, 6월 21일 자기가 목격한 그 남자라 말했다.

1980년 3월 19일 로드니 알칼라의 공공 변호원 존 바넷은 데이나 크라파는 6월 20일 한 남자가 여아를 끌고가는 장면을 보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6월 25일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 후에도 짭새에게 고자질 까지 않았는데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가 저런 행동을 한 이유를 자세히 수사해야 한다라 말했다.

1980년 3월 20일 로드니 알칼라와 같은 캘리포니아國 오렌지郡 교도소 공직자 숙소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 로버트 J 도브는 로드니 알칼라와 동료 공무원 마이클 에레라가 시체로 발견된 “로빈 샘소”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걸 들었다 증언했다.

1980년 3월 20일 마이클 에레라는 동료 공무원 로드니 알칼라로 부터 로빈 샘소를 어떻게 납치하고 죽였는지 자세한 부분을 듣고 서로 토론했다 말하며 당시 토론 내용을 자세히 증언했다.

1980년 4월 로드니 알칼라 변호원측은 로드니 알칼라가 여자들을 납치했단 증거는 없으니 납치로 고발된 부분은 취소시켜 달라 요청했다. 당시 캘리포니아國 법은 납치와 살인이 동시에 일어난 사건의 경우 최대 사형이 가능했다.

로드니 알칼라와 그의 변호원은 짭새끼들과 검새끼끼들이 여아들 납치한 부분은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을 것이라 추측해 저런 요청을 한것으로 보인다.

판새끼는 납치로 고발된건 취소하지 않았지만 14살 이하 어린이에게 음란, 외설적인 행위를 한 고발건은 취소시켰다.

1980년 4월 8일 로드니 알칼라와 그의 변호원 존 바넷은 6월 20일 로빈 샘소 납치사건이 있었을 당시 로드니 알칼라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있어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다 주장한다.

1980년 4월 9일 로드니 알칼라의 여동생인 크리스틴 드 라 세르다(결혼전 이름 크리스틴 알칼라)와 누나인 매리 토리아노(결혼전 이름 매리 알칼라) 그리고 로드니 알칼라의 당시 애인이었던 엘리자베쓰 켈레어가 법판쇼판에 등판해 6월 20일 로빈 샘소가 실종된날엔 자기들이 로드니 알칼라와 같이 있었으므로 로드니 알칼라는 시체로 발견된 로빈 샘소 사건과 관련이 없다 증언했지만 저 3명의 여자들의 증언들은 모두 선입견에 근거한 증언들로 간주됐다.

1980년 4월 9일 로드니 알칼라 변호원측은 캘리포니아國 오렌지郡 교도소에서 공직생활 중인 조셉 드레이크를 증언석에 내세웠다. 조셉 드레이크는 동료 공무원들인 로버트 J 도브와 마이클 에레라는 자기들의 개돼지새끼들 세금으로 자고 싸고 입고 처먹고 하는 기생인간 공무원 생활 임기를 깍기 위해 서로 짜고 로드니 알칼라와 마이클 에레라가 로빈 샘소 납치, 살해한걸 토론했다며 거짓말을 한것이라 증언했다.

1980년 4월 23일 1979년 6월 20일 한 남자가 여아를 강제로 끌고 수풀로 들어간걸 목격했다 증언한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의 증언에 대해 신빙성이 떨어진다 주장해온 로드니 알칼라의 변호원측이 이날 마지막으로 데이나 크라파의 목격담 신빙성에 대한 부분을 주장했다.

1980년 4월 28일 강간, 살인, 납치 사건등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 있던 로드니 알칼라의 유죄 무죄에 대한 마지막 재판쇼가 열렸다.

1980년 4월 29일 배심원새끼들의 유죄 무죄 선고 첫날이었지만 배심원들은 소방수 데이나 크라파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의 씹개구라인지 확인 할 수 없다며 로드니 알칼라의 유죄 무죄를 결정하지 못했다.

1980년 4월 30일 배심원새끼들은 결백을 주장하던 아이큐 170의 천재이자 공수부대출신 명문 뉴욕대 졸업생 로드니 알칼라에게 치명적인 도구를 사용해 강제로 납치 한 후 살해한 혐의로 1급 살인 유죄를 선물했다.

1980년 5월 7일 1급 살인 유죄를 선물 받은 로드니 알칼라에게 배심원들은 사형을 선물했다.

1980년 6월 20일 캘리포니아國 오렌지郡에 있는 수페리어 재판쇼판에서 열린 재판쇼에서 판새끼 필립 E 슈왑은 로빈 샘소 납치, 강간, 살인 혐의로 1급 살인 유죄와 사형을 선물 받은 로드니 알칼라의 사형을 다시 확정했고 사형 방법은 독까스 주입이라 아가리 놀렸다. 수페리어 재판쇼판에서 사형을 다시 확정한 로드니 알칼라 사건은 로드니 알칼라가 사형을 받아 수프림 법판쇼만 남았고 수프림 법판쇼판에서 재판쇼가 개최될때까지 로드니 알칼라는 산 쿠엔틴 공직자 숙소에서 미국 개돼지새끼들 호주머니서 후려친 세금으로 아가리 밥처먹고 똥꾸녁으로 똥싸고 세금으로 처들누버 자고 세금으로 옷입는 공무원생활을 하게 됐다.

국립 산 쿠엔틴 공직자 숙소

1980년 7월 11일 로스 엔젤레스郡 지역 검새새끼 사무소는 1979년 6월 14일 강도, 강간, 살해당한 질 파렌튜 사건 범인이 로드니 알칼라라 고발깟다.

질 매리 파렌튜

1980년 9월 1978년 캘리포니아國 리버사이드市 15살짜리 여아 강간 사건 유죄를 받은 로드니 알칼라는 캘리포니아國 국립성인학교에서 9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는 선물을 선사 받았다.

1980년 가을 1979년 2월 14일 히치하이킹을 하던중 로드니 알칼라와 만나 한적한 곳에서 나체 사진을 찍다 강간, 목졸림 살인 미수당한 15살짜리 백인 여아 모니퀘 호이트사건과 관련해 로드니 알칼라는 강간 혐의로 유죄 받았다.

1980년 가을 1979년 2월 14일 모니퀘 호이트사건과 관련해 로드니 알칼라는 9년 선물 받았다.

1981년 2월 로드니 알칼라는 변호원을 키쓰 먼로로 갈아 끼우고 키쓰 먼로는 로드니 알칼라의 사형은 부당하다며 맞고발 깐다.

1981년 4월 10일 로드니 알칼라와 그의 변호원측은 로드니 알칼라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인 로버트 J 도브와 마이클 에레라의 증언이 자기들 공직생활 단축을 위해 검새끼와 짜고 개구라 깐것이라 다시 주장했고 캘리포니아國 수프림 법판쇼판은 로드니 알칼라측의 주장도 그럴싸 하다 생각해 저 애들의 고발을 받아 들였다.

마이클 에레라는 로드니 알칼라와 12살짜리 로빈 샘소를 어떻게 납치 했는지 토론했다 주장했지만 저 토론과 관련해 도출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로빈 크리스틴 샘소

캘리포니아國에선 납치와 살인이 같이 일어나면 사형을 선물할 수 있으므로 만일 로드니 알칼라가 12살 로빈 샘소 납치 혐의 유죄를 받지 않았더라면 저 사건과 관련해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던 부분이었다.

1981년 4월 1980년 7월 11일 로스 엔젤레스郡 검새끼 사무소가 질 파렌튜 강도, 강간, 살인 사건 범인이 로드니 알칼라라 고발한 고발건은 재판쇼에서 증거가 단지 로드니 알칼라와 질 파렌튜가 서로 연관이 있단 목격자의 증언에만 기초해 고발된 것이라 판단돼 고발이 취소됐다.

질 매리 파렌튜

1981년 5월 28일 캘리포니아國 오렌지郡에 있는 재판쇼판에서 진행원 필립 E 슈왑은 다시 공무원 로버트 J 도브와 마이클 에라라를 쇼판에 초대해 증언을 들었다.

필립 슈왑 재판쇼 진행원은 로버트 도브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로드니 알칼라의 납치혐의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립하는 납치가 인정된다 판단했다.

공수부대출신 아이큐 170의 천재로 UCLA 캘리포니아 대학 입학후 뉴욕대학교에 재입학해 뉴욕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학생으로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명문대 출신의 우수한 유전자 공수부대출신 애국자 로드니 알칼라는 다시 형장의 아침이슬로 사라질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조선창년들 똥보지 똥물 바로 싸게 만드는 명문대생 미소천사 로드니 알칼라

1981년 8월 23일 캘리포니아國 수프림법판쇼는 사형을 선물받은 로드니 알칼라의 재판이 부당한 부분이 있다며 다시 재판쇼를 진행해야 한다 결론냈다.

캘리포니아國 수프림 법판쇼판은 로드니 알칼라의 12살 로빈 샘소 납치, 강간, 살인 혐의 재판이 열리기전 로드니 알칼라가 이전에 저지른 성범죄들을 배심원들이 알면 판결에 선입견을 줄 수 있으므로 알리지 말았어야 했지만 판결쇼가 열리기전 성범죄자 로드니 알칼라의 성범죄들을 배심원들에게 알린 부분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재판을 다시 치라야 한다 주장했다.

1986년 4월 23일 1979년 6월 20일 실종처리됐다 변사체로 발견된 12살 로빈 샘소 사건 재판이 다시 열렸다.

1986년 5월 25일 재판쇼가 끝나고 배심원새끼들은 개돼지새끼들 세금으로 아가리 밥빌어 처넣고 옷사입고 똥싸고 방바닥 처들누버 자는 생활중인 공무원 로드니 알칼라에게 이번엔 어떤 선물을 줄지 토의에 들어 갔다.

1986년 5월 28일 배심새끼들은 공수부대출신 명문대 졸업생 로드니 알칼라가 12살 로빈 샘소를 흉기를 사용해 납치하고 불법 감금한 후 강간 살인한 혐의로 1급 살인, 강간, 납치 유죄를 또 선물했다.

로빈 크리스틴 샘소

1986년 6월 9일 1급 살인, 납치, 강간을 선사받은 로드니 알칼라에게 또 어떤 선물을 줄지 다시 토의에 들어 갔다.

1986년 6월 9일 로드니 알칼라는 쇼진행원 필립 E 슈왑에게 자기에게 현재 고용된 공공 변호원 새끼들은 자기가 12살 로빈 샘소 강간 납치 살인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하는 의지조차 내비치지 않았으므로 이번 자기에게 고발된 12살 로빈 샘소 납치, 강간, 살인 사건 재판은 고발이 취소되야 한다 요청 했지만 쇼진행원 필립 E 슈왑은 로드니 알칼라의 요청을 거부했다.

1986년 6월 1968년 9월 25일 당시 8살일때 로드니 알칼라에게 강간당한 탈리 샤피로와 1979년 2월 13일 당시 15살일때 히치하이킹을 하다 로드니 알칼라의 차를 얻어타 2월 14일 목졸림과 강간을 당한 모니퀘 호이트가 법판쇼에 등판해 증언했다.

1986년 6월 19일 배심새끼들은 로드니 알칼라에게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게 해줄지 사형을 선물할지 판단에 들어갔다.

1986년 6월 20일 캘리포니아國 오랜지郡 수페리어 법판쇼판에서 배심새끼들은 로드니 알칼라에게 12살 로빈 샘소 살인등의 혐의로 다시 사형을 하사하였다.

1986년 8월 20일 재판진행과 배심새끼들의 판결에 문제가 없는지 진찰한 판새끼는 재판에 문제가 없다 보고 12살 로빈 샘소 납치, 강간 살인 혐의로 사형을 받은 로드니 알칼라의 공무원숙소의 아침 이슬 판결을 확정했다.

1992년 12월 21일 캘리포니아國 수프림 법판쇼에서도 로드니 알칼라의 공무원 숙소 아침 이슬 판결이 만장일치로 확정됐다.

2001년 4월 2일 미국 연방 재고발 전용 재판쇼판은 캘리포니아國 수프림 법판쇼판에서 형장의 아침이슬 판결이 확정된 로드니 알칼라 재판때 로드니 알칼라측이 제시한 판결을 다르게 도출 시킬 수도 있었던 물적 증거들이 당시 재판때 캘리포니아國 수프림 법판쇼판 판새개새끼가 기각해 재판때 제출되지 못한부분이 인정되 형장의 이슬이 확정된 로드니 알칼라의 재판은 다시 치라져야 된다 판결했다.

2003년 6월 5일 로스엔젤레스郡 검새끼 사무소는 사건이 일어난지 25여년이 지난 만큼 DNA와 지문 채취등 증거조사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저에 따른 새로운 증거들 발견으로 1977년 시체로 발견된 질 바컴, 조지아 윅스테드와 1978년 변사체로 발견된 샬롯 램등 총 여자 3명과 살인 사건과 관련해 공무원 생활중인 로드니 알칼라를 저 애들의 살인사로 또 다시 고발 깟다.

질 바컴
조지아 윅스테드
샬롯 램

2010년 1월 11일 총 5명을 살인한 혐의로 고발된 로드니 알칼라의 재판이 시작됐다. 아이큐 170으로 명문대를 졸업한 공수부대 애국자 출신의 천재 로드니 알칼라는 워싱턴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전도 유명한 정치인으로 일하다 많게는 수백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드 번디와 마찬가지로 변호원을 쓰지 않고 자기 스스로 변호하기로 했다.

2011년 로드니 알칼라는 1971년 실종된 코넬리아 마이클 크릴리와 1977년 시체로 발견된 엘렌 제인 후버 사건 범인으로 또 고발됐다.

2012년 12월 14일 아이큐 170의 천재로 초중고를 예수학교를 다닌 후 공수부대를 제대하고 UCLA 입학후 다시 명문 뉴욕대에 입학해 명문 뉴욕대에서 유명 할리우드 소아 성애자 강간마 유태인 영화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의 수업을 듣고 동료 학생들 사이에 인기있는 학생으로 졸업한 로드리고 자퀘스 알칼라-부커는 엘렌 호버와 코넬리아 크릴리를 살해한 혐의 유죄 선물 받았다.

 

 

로드니 알칼라 신상명세

성별: 남자
인종: 백인
희생자: 8명(증거가 있는 공식 희생자 일뿐 100~200명 사이 살해 했을 것으로 추정)
살해가 일어난 나라: 캘리포니아국, 뉴욕국
생년월일: 1943년 8월 23일
출생장소: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
형제자매: 2남 2녀중 셋째
형제 수: 3명
키운 애: 안나 마리아 구티에레즈(애미)
부모 결혼 상태: 이혼
고아원, 탁아소 등지에 간적없고 양부모 손에 자란것도 아니고 친애미와 지 형제 자매 사이에서 자랐다.
가족 특이 사항: 1951년 할매가 죽고 비슷한 시기에 로드니 알칼라의 애비가 가족을 버리고 가정을 떠났다.
학창시절 특이 사항: 없었다. 로드니 알칼라를 알던 그의 학교시절때 급우들은 로드니 알칼라는 친구들이 매우 많았고 수려한 외모와 건장한 신체로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여학생들과도 많이 교제했다 말했다. 피아노를 잘 쳤다. 고등학교때 크로스컨트리부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앨범 제작에 참가했다.
신체 결함: 없다.
언어 장애: 없다.
머리 다친적: 없다.
육체적으로 학대 당한적: 없다.
정신적으로 학대 당한적: 없다.
성적으로 학대 당한적: 없다.
애비 직업: 애비 라오 알칼라-부커는 스페인어 교사
애미 직업: 애미 마리아 구티에레즈 알칼라는 특별한 직업 없었다.
애비의 술/마약 정도: 술/마약 안처먹었다.
애미의 술/마약 정도: 술/마약 안처먹었다.
학력: 캘리포니아 대학교 미술학과 졸업(이 새끼가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입학만 하고 졸업은 못한줄 알았는데 이 새끼가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뉴욕대학교 미술학과를 다 졸업했는 갑다.
최종 학위: 예술(미술)학과 학사
지능: 천재로 아이큐 170
직업: 대학교 다닐때 학비를 벌기 위해 경비로 일했다. 대학교 졸업후 뉴햄프셔國에 있는 야외 연기학교에서 상담원으로 일했다. 사진사로도 일했고 LA타임즈 신문지업소에서 신문지 찍어내기 위한 철자를 셋팅하는 일도 했다.
살인 기간 직업 유무: 연쇄 강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닐때 직업이 있었다.
성적 취향: 소아성애자, 이성애자로 추정
결혼상태: 미혼
자식: 0명
어릴때 동물학대, 불장난을 한적 없고 오줌을 늦은 나이때 까지 이불에 싸지도 않았다.
마약: 대마초 복용
주량: 술 안마심
정신상담원에게 간적: 공수부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할때 정신상담원과 상담한적 있고 신경쇠약, 반 사회적 인격 장애, 만성 무기력증으로 진단 받았다.
연쇄 강간 살인 행각을 벌이기전 범죄 유무: 있다.
연쇄 강간 살인 행각을 벌이기전 공직자 숙소에 간적: 있다.
희생자: 증거가 있는 8명의 희생자중 7명의 살인에 대해서 유죄를 받았고 8명중 2명만 자기가 그 애들을 죽였다 자백했지만 자백 취소
희생자 특징: 젊은 금발 백인 여자
밝혀진 살해당한 희생자들 나이: 12, 18,19, 21, 23, 23, 27, 31
살해 방법: 둔기 가격, 목졸라 죽이기
살해 도구: 자기의 왼손 오른손 양손, 기타 물체
총을 살해 도구로 사용한적 있나: 없다.
동거녀를 죽인적 있나: 없다.
희생자들과의 거리: 자기 집에서 차를 타고 갈수 있는 곳들.
희생자들을 처음 만난 장소: 해변, 술집, 희생자의 집등.
살해 장소: 공공장소와 희생자들의 집
희생자의 집에서 살해한적 있나: 있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 집에서 희생자를 살해한적 있나: 없다.
희생자 강간 유무: 모든 희생자들 강간
희생자 고문 여부: 모든 희생자들 고문
희생자 제압 여부: 희생자들 모두 힘으로 제압
고통 없이 빠르게 살해 했는가: 장시간 희생자들을 고문하며 강간 살해했다.
희생자들에게 눈가리게를 씌웠나: 씌웠다.
희생자들을 결박했나: 결박했다.
살해한 후 시체 강간했나: 시체강간 하지 않았다.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냈나: 시체를 토막냈다.
살해한 후 시체를 먹었나: 먹지 않았다.
살해한 후 피를 마셨나: 피를 마시지 않았다.
살해한 후 시체를 인형처럼 자세를 취하게 했나: 살해한 후 시체로 여러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살해한 후 희생자 신체 일부를 전리품으로 보관했나: 보관하지 않았다.
살해한 후 희생자들의 소지품을 전리품으로 보관했나: 보관했다.
희생자들의 시체를 숨기거나 매장했나: 희생자들을 강간 고문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냈을뿐 시체를 숨기거나 매장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시체를 다른 장소로 운반한적 있나: 희생자들을 강간, 살해, 고문한 그 장소에서 시체를 토막내고 은닉, 매장, 이동 시키지 안고 살해한 장소에 그대로 시체를 유기했다.
시체를 불태운적 있나: 없다.
시체를 강이나 호수등 물에 빠트린적 있나: 없다.
체포 날짜: 1979년 7월 26일 로빈 샘소 살인 용의자로 체포됐다.
유죄 날짜: 1986년 6월 20일
형량: 형장의 아침 이슬
아침 이슬 당했나: 아침이슬 안당했고 아침이슬 대기중이다.
정신병자라 주장한적 있나: 없다.
자백여부: 유죄가 확정된 후 자백한적 있다. 자기가 죽였다 자백한 애는 코넬리아 크릴리와 엘렌 호버 단 2명으로 나중에 모두 자기가 안죽였다며 자백을 취소해 현재까지 로드니 알칼라는 누굴 죽였다고 자백한 희생자가 한명도 없고 자기는 살인마가 아니며 결백하다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공직생활 중인 숙소: 캘리포니아國 산 쿠엔틴市 공직자 숙소
자살 여부: 자살 시도 했지만 실패
공직자 숙소에서 동료 공무원 살해 여부: 동료 공무원을 살해하려 한적 있지만 실패했다.
사망 날짜: 현재 공무원업무를 하며 살아 있다.

 

로드니 알칼라 관련 테레비전 쇼

 

 

증거를 통해 로드니 알칼라에게 강간 살해된것으로 밝혀진 희생자들

질 바컴

이름: 질 바컴
살해된 날짜: 1977년 11월 9일
시체 발견 날짜: 1977년 11월 10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18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머리와 목에 둔기로 가격당했고 목졸림 당했다.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할리우드 힐즈시
살해당한 郡: 로스 엔젤레스도
범죄 유형: 묻지마 범행으로 둘간 아무 관계 없었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받았다.

질 바컴은 모리스 바컴과 조이스 바컴 사이에서 태어났고 형제론 5명의 여자 형제와 5명의 남자 형제가 있다.

모리스 바컴은 1996년 죽었고 조이스 바컴은 2012년 죽었다. 모리스 바컴과 조이스 바컴은 뉴욕國 오네이다都에 있는 성자 패트릭 공동묘지에 뭍혀 있는 딸 질 바컴 옆에 매장됐다.

질 바컴은 동양인과 깜둥이들이 벅실벅실 거리는 개판 오분전인 캘리포니아國으로 가기전 엘레인 바컴등 자기 친척,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질 바컴의 사촌 엘레인 바컴은 “질 바컴이 캘리포니아國으로 가기 한달전쯤 본게 그 애를 본 마지막이었고 그 애한테 잘가란 작별인사를 했다. 작은 체구의 애였어. 몸무게가 40kg도 나가지 않았을 끼다. 질 바컴은 말이 많고 다정했던 소녀였다. 로드니 알칼라에게 살해당한 모든 희생자들은 예정된 운명보다 빨리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애들은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단걸 난 알고 있어.”라 말했다.

질 바컴의 가족들은 처음엔 12~18살짜리 여자들 최소 10명 이상 살해한 “힐사이드 스트랭글러” 사촌 형제 케네쓰 비안키와 안젤로 부오노가 질 바컴을 살해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말했다.

하지만 1977년 뉴욕國 오네이다都에 있는 오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캘리포니아로 질 바컴이 시체로 발견된지 약 28년 후인 2005년 DNA검사 결과 질 바컴은 UCLA명문대 졸업생 로드니 알칼라에게 걸려 살해 당한 걸로 밝혀 졌다.

 

조지아 윅스테드

이름: 조지아 윅스테드
살해된 날짜: 모른다.
시체 발견 날짜: 1977년 12월 16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27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망치로 구타당하고 목졸림 당했다.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말리부시
살해당한 郡: 로스 엔젤레스도
범죄 유형: 로드니 알칼라가 조지아 윅스테드를 그녀의 집안에서 살해 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받았다.

조지아 윅스테드는 1949년 12월 22일 뉴욕國에서 태어났고 살해당할 당시 캘리포니아國 잉글우드市에 있는 센티넬라 병원에서 등록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조지아 윅스테드는 살해당하기전 망치 구타등 장시간 고문당한 것으로 추측되고 사망 원인은 망치 가격과 목졸림이다. 나체로 발견된 그녀의 시체 옆에서 로드니 알칼라가 조지아 윅스테드를 구타할때 사용한 망치도 같이 발견됐다.

 

샬롯 램

이름: 샬롯 램
살해된 날짜: 모른다.
시체 발견 날짜: 1978년 6월 24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32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목졸림 당했다.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엘 세군도시
살해당한 郡: 로스 엔젤레스도
범죄 유형: 로드니 알칼라가 샬롯 램의 집에 침입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받았다.

샬롯 램은 엘 사군도市 연립주택단지에 있는 한 세탁장에서 연립주택단지 관리원이 양손이 등뒤로 결박돼 있는 나체의 샬롯 램 시체를 발견했다. 사망원인은 신발끈으로 목졸림 당했다.

샬롯 램은 살해당할 당시 산타 모니카市에 있는 한 회사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질 매리 파렌튜
질 매리 파렌튜

이름: 질 파렌튜
시체 발견 날짜: 1979년 6월 14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21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질식사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뷰뱅크시
살해당한 郡: 로스 엔젤레스도
범죄 유형: 로드니 알칼라가 질 파렌튜 집에 침입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받았다.

질 파렌튜는 1957년 10월 17일 캘리포니아국에서 태어났고 살해당했을 당시 뷰뱅크市에 있는 한 컴퓨터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1979년 6월 14일 미육군 공수부대출신의 로드니 알칼라는 뷰뱅크市에 있는 질 파렌튜가 살던 연립주택 창문을 쇠지렛대로 딴 후 강간, 살해 했다. 질 파렌튜는 나체로 얼굴에 베개가 덮혀진체 발견됐다.

 

로빈 크리스틴 샘소
로빈 크리스틴 샘소

이름: 로빈 샘소
살해된 날짜: 1979년 6월 20일
시체 발견 날짜: 최초 발견한 자와 짭새가 발견한 날짜가 다르다.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12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아동이라 짭새가 공개하지 않았다.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허팅튼 해수욕장시
살해당한 郡: 오렌지도
범죄 유형: 로드니 알칼라가 사진사로 접근.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받았다.

1966년 태어난 로빈 샘소는 사건 당일 발레 학원을 가기 위해 동네에서 자전거를 빌린 후 친구 브리짓을 만나 허팅턴 해수욕장에 갔다가 로드니 알칼라를 만났다. 로드니 알칼라는 자기가 사진사고 잡지에 싣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 보는게 어떻겠냐 말했고 로빈 샘소는 거절했다. 저 후 로빈 샘소는 브리짓과 헤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발레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로빈 샘소의 살아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로빈 샘소는 실종처리되고 12일 후에 산타 모니카 계곡路에 있는 수풀이 우거진 언덕 하부에서 매우 부폐한 시체로 발견됐다.

 

코넬리아 미셀 크릴리
코넬리아 미셀 크릴리

이름: 코넬리아 미셸 크릴리
살해된 날짜: 미상
시체 발견 날짜: 1971년 6월 24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23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목졸림 당했다.
살해당한 나라: 뉴욕국
살해당한 도시: 뉴욕시티시 맨하탄九
살해당한 郡: 뉴욕도
범죄 유형: 모름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현재까지 안받았다.

코넬리아 크릴리는 1948년 뉴욕國 퀸즈都에서 출생했고 고향에 있는 카발리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뉴욕市 브루클린區에 있는 올 세인츠 커머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트랜스 월드 항공업소 TWA 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뉴욕市 맨하탄區 어퍼 동쪽洞에 있는 자기가 살던 연립주택안에서 강간, 목졸림당한 변사체로 발견됐다.

코넬리아 크릴리의 시체가 발견됐을땐 증거 부족으로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DNA 검사기술이 발달해 새로운 DNA증거로 2011년 로드니 알칼라가 코넬리아 크릴리 살범인으로 고발된 상태다.

 

엘렌 제인 호버
엘렌 제인 호버
엘렌 제인 호버
엘렌 제인 호버
엘렌 제인 호버

이름: 엘렌 제인 호버
살해된 날짜: 1977년 7월 16일
시체 발견 날짜: 1978년 6월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23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미상
살해당한 나라: 뉴욕국
살해당한 도시: 뉴욕시티시 맨하탄區
살해당한 郡: 뉴욕도
범죄 유형: 모름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현재까지 안받았다.

1953년 8월 2일 캘리포니아國 로스 엔젤레스市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엘렌 제인 호버는 자기 수첩에 “존 버거”란 이름의 남자에 대해 UCLA 예술(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로만 폴란스키아래 영화수업을 받았고 요 최근 야외 여름 연기학교에서 예술을 가르치는 애라 적어 놨었는데 모두 사실이었다.

엘렌 호버의 수첩에 따르면 사진기를 들고 있는 “존 버거”란 남자가 먼저 니의 아름다움을 자기의 카메라에 담고 싶다 접근했다”라 나와 있다.

엘렌 제인 호버의 친한 친구는 당시 엘렌 제인 호버는 남에게 싫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존 버거란 남자가 엘렌 호버에게 점심약속을 거의 강요하다시피해 엘렌 호버는 수락했고 엘렌 호버가 “존 버거”란 남자와 점심약속을 하러 간다며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말했다.

엘렌 호버가 점심약속이 있다며 만나러간 존 버거가 로드니 알칼라라면 그 존버거는 천재인 아이큐 170의 아주 높은 지능에 록밴드 멤버같은 수려한 용모를 하고 있지만 9년전 8살짜 여아를 쇠파이프로 거의 죽기 일보직전까지 후려갈긴 후 강간한적이 있는 애였다.

 

파멜라 진 램슨

이름: 파멜라 진 램슨
살해된 날짜: 1977년 10월 8일 실종
시체 발견 날짜: 1977년 10월 9일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19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둔기로 가격당했다.
살해당한 나라: 캘리포니아국
살해당한 도시: 근처에 샌프란시스코시가 있다.
살해당한 郡: 매린都
범죄 유형: 로드니 알칼라가 모델을 시켜주겠다고 꼬득였다.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현재까지 안받았다.

파멜라 진 램슨은 1958년 4월 25일 캘리포니아國 4남 1녀중 4째로 태어났고 인기관광지인 샌프란시스코市 낚시꾼의 부두洞에서 한 프리랜서 사진사를 만나러 나간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됐고 샌 프란시스코시와 근접한 매린都에서 1977년 10월 9일 변사체로 발견됐다.

파멜라 진 램슨의 어마이 베티 진 고든 램슨은 2016년 사망했고 파멜라 진 램슨 곁에 매장됐다.

당시 19살이던 파멜라 램슨은 샌프란시스코市 낚시꾼의 부두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프리랜서 사진사를 만나러 간다며 10월 8일 집을 나갔고 다음날인 10월 9일 타말파이스山 산책로에서 심하게 구타당해 몸 여러 부위가 멍든 상태의 나체 시체로 발견됐다.

낚시꾼의 부두洞에 있는 한 상점 점원이 목격한 파멜라 램슨과 같이 있었던 남자의 몽타주와 로드니 알칼라

새로운 DNA 분석기술등 증거분석 기술의 발달로 로드니 알칼라는 2011년 파멜라 램슨 살인 용의자로 고발됐다.

매린都 보안새끼 체포조 라이언 피터슨은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파멜라 램슨을 살해한 애를 쫏아 다녔고 마침내 용의자를 결론냈다. 우린 로드니 알칼라가 팸 램슨의 살인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라 말했다.

팸 램슨은 당시 산 호세市 서니베일洞에 있는 한 컴퓨터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었고 강간, 구타, 목졸림당한 그녀의 시체는 살인범이 어떤 특정 포즈를 취하게 하려한 흔적이 있었고 그녀가 차고 있었던 귀걸이들은 사라졌었다.

 

크리스틴 루쓰 쏜튼
크리스틴 루쓰 쏜튼

이름: 크리스틴 루쓰 쏜튼
살해된 날짜: 1977년 실종
시체 발견 날짜: 1982년 4월 6일 위 오도바이와 함께 사진이 찍힌곳 근방에서 머리카락과 뼈다귀 일부 발견. DNA 대조를 통해 2015년 신원 확인
성별: 여자
인종: 백인
나이: 28살
어떻게 살해 당했나: 미상
살해당한 나라: 와이오밍國
살해당한 도시:
살해당한 郡: 와이오밍國 스위트워터都
범죄 유형: 도로에서 만난 것으로 추정.
로드니 알칼라가 자기가 저질렀다 자백했나: 안했다.
로드니 알칼라가 유죄 받았나: 현재까지 안받았다.

텍사스國 샌 안토니오市에서 살고 있었던 크리스틴 루쓰 쏜튼은 3녀중 장녀고 여동생이 2명있었다. 당시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둘은 자주 싸웠다. 1977년 여름 몬태나國에 남자친구와 함께 금을 캐러 간다며 떠났지만 크리스틴 쏜튼의 가족들은 임신중이던 크리스틴 쏜튼이 곧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태어날 날짜에 대해비 준비하고 있었다.

크리스틴 쏜튼의 가족들은 금을 캐러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그녀가 조만간 돌아 올것이라 기다렸지만 수주가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고 그 후 30년이 넘게 크리스틴 쏜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크리스틴 쏜튼의 남자친구는 와이오밍國 그린리버市에서 크리스튼 쏜튼과 싸웠고 그 후 헤어진 후 자기도 크리스틴 쏜튼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 말했다.

크리스틴 쏜튼의 가족들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크리스틴 쏜튼을 해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수십년 후 로드니 알칼라가 임대한 워싱턴國 시애틀市에 있는 보관 창고에서 위 오도바이를 타고 있는 크리스틴 쏜튼의 사진이 발견됐고 저 사진이 찍힌곳에서 근방에서 1982년 사람의 유해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뼈다귀 일부가 발견됐다.

1982년 짭새끼들은 오도바이를 타고 있는 크리스틴 쏜튼의 사진 배경으로 그 사진이 찍힌곳 위치를 추정해 그 근방에서 머리카락과 사람뼈 일부를 발견했었다.

저후 30년이 넘게 1982년 발견된 시신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크리스틴 쏜튼의 막내 여동생 케이씨 쏜튼은 30여년전 행방불명됐던 자기 언니를 찾으러 유투브등지에 호소했고 케이씨 쏜튼의 게시물을 본 한 사람이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짜바리소가 공개한 로드니 알칼라가 찍은 사진들에 나온 사람중 한명과 크리스틴 쏜튼이 닮았다고 고자질 깟다.

케이씨 쏜튼은 짭새한테 고자질 깟꼬 짭새는 케이씨 쏜튼의 DNA와 1982년 4월 6일 발견된 뼈다귀 DNA를 비교해 2015년 그 뼈다귀의 주인이 크리스틴 루쓰 쏜튼의 것이라 확인했다.

 

로드니 알칼라의 최종 학력이 UCLA를 재학중이었다, 뉴욕대를 졸업했다등 흐리멍텅하게 처갈겨져 있어 로드니 알칼라가 UCLA재학중 8살 탈리 샤피로를 강간때리고 뉴욕에서 “존 버거”란 가명으로 뉴욕대 입학신청 허가를 받아 뉴욕대 예술(미술)학과만 졸업한줄 알았는데 찾아 보니 로드니 알칼라는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예술(미술)학과와 뉴욕대 예술(미술)학과 2개 대학 모두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로드니 알칼라 아이큐 170은 CBS신문지 참고. 로드니 알칼라의 아이큐는 160~170사이로 여튼 천재들의 아이큐.

아이큐 170의 천재 강간, 고문, 구타 명문대 졸업생 살인마 로드니 알칼라

 

 

 

아래 사진들은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해변 짭새소는 워싱턴國 시애틀市에 있던 로드니 알칼라의 창고에서 발견한 1천여장이 넘는 여자들과 어린이들 사진들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애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사진들을 일부 공개 했고 아래 사진들은 허팅튼 해수욕장 짜바리소가 공개한 사진들의 일부다.

짭새들은 명문대생 연쇄 살인사 로드니 알칼라 체포후 그의 거주지에서 발견한 사진들의 사진속 주인공을 알아내기 위해 공개할 수 있는건 공개했지만 로드니 알칼라의 가지고 있던 사진속 주인공들은 30여명밖에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고 현재까지도 그가 가지고 있던 사진속 주인공들 수백명의 신원들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허팅턴 짭새소가 신원확인을 위해 공개한 100여장이 넘는 사진들중 일부로 아래 사진들 모두 실종신고 조차 접수된적 없어 누구인지 신원확인이 2018년 오늘날까지도 되지 않은 애들이다.

당연히 짭새들은 아래 사진이 누구인지 모르므로 아래 사진들에 나오는 애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이큐 170의 천재 명문대생 살인마 로드니 알칼라가 아래 사진에 나오는 애들을 모두 죽였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다.

아래 사진들중 니가 알아보는 애가 있으면 캘리포니아國 허팅튼 해변 짭새소 714-375-5066 또는 FBI에 고자질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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