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 태(마쯔나가 후토시)의 키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 사건

후토시 마쯔나가(일본식 정확한 이름: 마쯔나가 후토시 松永 太, 한자식: 송영 태)

주범 후토시 마쯔나가 생년 1961년 4월 28일
공범 준코 오가타 생년 1962년 2월 25일

송영 태 / 준코 오가타

 

살해당한 희생자
쿠미오 토라야 (송영 태 친구 1996년)
타카시게 오가타 (준코 오가타 아버지 1997년 12월)
시즈미 오가타 (준코 오가타 어머니 1998년 1월)
레이코 오가타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 1998년)
카즈야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남편 1998년 4월)
유키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아들 1998년)
아야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딸 1998년 6월)

 

내가 보기엔 희생자들의 관계가 좀 복잡한데
후토시 마쯔나가와 준코 오가타가 공범이고 밝혀진 사망한 희생자들 중 쿠미오 토라야를 제외하면 모두 준코 오가타의 가족들이다.

밝혀진 희생자들은 준코 오가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과 여동생의 남편과 자식들이고 혈연 관계가 없는 밝혀진 희생자론 쿠미오 토라야가 있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 잘하고 말도 잘해 주변에 인기가 있는 애였으나 사고를 치고 다니는 문제아였고 고등학교땐 여중생이랑 동거를 해 다른 남자고등학교로 전학을 간적이 있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19살때인 1980년 한 여자랑 결혼을 했고 저 여자 사이에 1명의 아들이 있다.

1982년 후토시 마쯔나가는 유부남 임에도 고등학교 동창인 준코 오가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시작해 준코 오가타와 1985년 부터는 동거를 시작했고 둘 사이엔 2명의 자식이 있다.

준코 오가타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준코 오가타의 어머니 시즈미 오가타가 자기 딸이 당시 유부남인 후토시 마쯔나가와 만나는 걸 반대하자 후토시 마쯔나가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며 시즈미 오가타를 한 호텔로 불러 냈고 저 호텔에서 시즈미 오가타에게 성적으로 매우 몹쓸 짓을 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후토시 마쯔나가는 업종을 이불 판매업으로 변경했다.

이불 사업을 할 때 후토시 마쯔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니 뒤에 귀신이 붙어 있어 니 운을 빨아 먹고 있다”등 종교인들이 하는 말을 하면서 저 말에 혹한 사람들을 귀신을 쫏아 준다며 자기 회사에 합숙시켜 전기고문을 하며 무임금(열정페이)으로 부려 먹었다.

1993년 4월 후토시 마쯔나가는 동거녀인 준코 오가타가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속인 체 남편이 있고 자식이 3명 있는 한 유부녀와 사귀기 시작했고 저 여자에게 1천 1백 80만 엔을 사기친다.

자식 3명 있는 유부녀는 마쯔나가의 매력에 넘어가 남편과 이혼 후 자식 3명중 어린 딸아이 1명만 데리고 갔고 저 딸은 1993년 9월 사인불명으로 사망했고 저 유부녀도 1994년 3월 사망했는데 당시 유부녀의 사인은 자살로 처리됐다.

일본 폴리스는 1993년 사망한 유부녀의 딸과 1994년 자살로 처리된 유부녀를 후토시 마쯔나가가 살해했는지 입증하지 못해 저 2명은 후토시 마쯔나가가 살해한 사람 명단에 없다.

1994년 후토시 마쯔나가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던 자기 친구 쿠미오 토라야로 부터 자기가 친딸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말을 듣는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쿠미오 토라야의 비밀을 들은 후 쿠미오 토라야와 쿠미오 토라야의 딸을 협박하기 시작했고 저 부녀를 감금한체 쿠미오 토라야를 전기로 고문하기 시작한다.

고문을 당하다 자기의 배설물을 먹기도 한 쿠미오 토라야는 자기 친딸과 후토시 마쯔나가의 고문으로 1996년 2월 26일 34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1996년 당시 11살이던 쿠미오 토라야의 딸에게 니가 니 아버지를 죽였다 교육시키고 쿠미오 토라야의 시체를 완전히 분해한 후 쿠미오 토라야의 딸과 준코 오가타를 시켜 바다에 버렸다.

쿠미오 토라야가 죽은 후 후토시 마쯔나가는 쿠미오 토라야의 지인인 딸이 있는 유부녀를 사귀고 그 여자로부터 5백 60만엔을 말빨로 받아 낸다.

한날 저 여자는 자기의 3살짜리 딸을 데리고 후토시 마쯔나가의 집에 갔고 후토시 마쯔나가는 저 여자와 딸을 감금한다.

저 여자 역시 감금당한 체 고문을 당하다 1997년 3월 2층에서 뛰어내려 탈출했고 저 후 저 여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 가고 있다.

1997년 4월 일을 하러 간 준코 오가타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후토시 마쯔나가는 준코 오가타의 집에 연락을 취해 그녀의 어머니인 시미즈 오가타에게 니 딸은 살인범이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저래도 준코 오가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후토시 마쯔나가는 오가타의 가족들과 함께 자기가 자살을 했다는 가짜 소식을 주변에 퍼뜨리고 실제로 자기의 장례식도 치른다.

준코 오가타는 자기 가족들에게서 후토시 마쯔나가가 자살을 했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 갔지만 그는 살아 있었고 후토시 마쯔나가는 준코 오가타를 심하게 고문 폭행한다.

준코 오가타가 또 다시 후토시 마쯔나가와 같이 살게 되자 부자집안인 준코 오가타의 가족들은 후토시 마쯔나가에게 6천 3백만 엔을 후토시 마쯔나가에게 준다.

저 후 후토시 마쯔나가는 준코 오가타의 남편과 자식이 있던 유부녀 여동생 레이코 오가타와 다시 성관계를 하기 시작한다.

레이코 오가타는 중학생일 때 당시 고등학생이던 후토시 마쯔나가와 성관계를 이미 한적이 있었다.

레이코 오가타의 가족들은 후토시 마쯔나가를 마치 종교쟁이들이 믿는 교주처럼 그를 믿고 따랐다고 하며 후토시 마쯔나가는 오가타가족들을 계급으로 나눠 자기 말을 잘 듣는 애는 고위 계급 자기 말을 안 듣는 애는 하위 계급으로 강등시켰고 상위 계급자가 하위 계급자를 고문하는 방식으로 위계질서를 유지했다고 한다.

1997년 12월 21일 후토시 마쯔나가는 준코 오가타에게 니 아버지를 고문하라 시켰고 준코 오가타의 아버지는 61살의 나이로 전기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1998년 1월 20일 오가타 가족들에겐 화려한 말솜씨와 음해와 이간질 그리고 전기고문으로 종교쟁이들이 믿는 신이나 다름없게 된 후토시 마쯔나가는 레이코 오가타와 그녀의 남편 카즈야 오가타에게 준코, 레이코 오가타 자매의 어머니인 시즈미 오가타를 교살하라 명령을 내렸고 시즈미 오가타는 58살의 나이로 질식사 당했다.

레이코 오가타는 계속된 110볼트(백십볼트) 전기 고문으로 인해 귀머거리가 됐고 결국 딸 아야 오가타에게 신체를 붙들리고 남편 카즈야 오가타에게33살의 나이로 1998년 1월 20일 질식사 당했다.

카즈야 오가타 역시 1998년 4월 13일 38살의 나이로 변소에 갇힌 체 굶어 죽었다.

레이코 오가타와 카즈야 오가타의 아들 유키 오가타 역시 1998년 5월 17일 5살의 나이로 준코 오가타와 쿠미오 토라야의 딸에 의해 붙들린 상태에서 누나인 아야 오가타에 의해 질식사 당했다.

당시 10살이던 아야 오가타 역시 1998년 6월 7일 당시 13살이던 쿠미오 토라야의 딸에 의해 질식사 당했다.

살해당한 모든 희생자들의 시체는 삶아진 후 분해돼 공공변소나 바다에 버려 졌고 식인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0년 7월 후토시 마쯔나가는 결혼을 전제로 또다른 유부녀와 교제하기 시작했고 그녀에게서 역시나 2천만 엔을 이걸 빌렸다고 해야 되냐? 아니면 사기를 쳤다고 해야 되냐?

여튼간에 저 유부녀는 자신의 쌍둥이 자식들을 후토시 마쯔나가와 준코 오가타에게 맡겼고 후토시 마쯔나가는 저 유부녀의 쌍둥이들을 양육하는데 필요 하다며 2천만 엔을 받아 냈다.

2000년 당시 환율은 모르겠는데 2천만 엔은 현재 환율로 2억이 넘는 매우 큰 돈이다.

2002년 1월 30일 17살이된 쿠미오 토라야의 딸은 매우 심한 고문 속에서 살던 후토시 마쯔나가와 준코 오가타가 살던 집에서 탈출하지만 다시 붙잡혔고 110볼트 전기고문 뿐만 아니라 발톱이 뽑히는 등 각종 고문을 더 당한다.

2002년 3월 6일 쿠미오 토라야의 딸은 다시 탈출하고 이번엔 폴리스에게 가서 범죄 사실을 털어 놓는다.

폴리스는 다음날 후토시 마쯔나가와 준코 오가타를 체포했다.

쿠미오 토라야의 딸은 살인 혐의로 고발되지 않았다.

준코 오가타는 교수형을 받았지만 재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체포된 후 모든 살인은 쿠미오 토라야의 딸과 준코 오가타가 했다며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만 사형을 받았다.

송영 태

 

이 사건을 나도 많이 정화, 삭제시켜 갈겨 놨는데 이 사건을 초기엔 일본 매스컴들은 토리야의 딸이 납치, 감금된 사건으로 보도했지만 류조 사키등 몇명이 이 사건을 폭로해 이 사건이 일가족 살인사건이란 실체가 공개됐다.

앞서 적었지만 후토시 마쯔나가는 일본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매우 잘했고 특히나 말을 아주 잘하는 애라 학생들 사이에 인기 있는 학생이었지만 문제아 였다고 하고 19살에 처음 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 중에도 최소 10명 이상의 애인들을 항상 거느리고 있었다.

준코 오가타는 부유층 딸이자 후토시 마쯔나가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등학생땐 둘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고 졸업 후에 후토시 마쯔나가와 만나 범행을 저질렀다.

사망자들은 모두 분해되거나 바다에 버려졌기 때문에 발견된 시체는 없고 현재 돌아다니는 후토시 마쯔나가와 준코 오가타의 범행들은 모두 준코 오가타와 쿠미오 토라야의 딸의 진술들을 기반으로 한 것이긴 한데 준코 오가타와 쿠미오 토라야의 딸 모두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110볼트 전기고문등을 당했기 때문에 저들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일단 여기 까지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송영 태에 관해 적혀 있는 영어 글을 번역한 것이고 물론 번역은 마메브이의 돌팔이가 하였다.

 

위 신문에 나오는 나이는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살아 있으니 위 신문이 보보될때 당시 나이고 희생자들의 나이는 희생자들이 살해 당했을때 당시의 나이다.

후토시 마쯔나가는 영어식 이름이고 일본어로 본명은 松永 太인데 한자로 바꾸면 송영 태가되고 일본어 발음으론 마쯔나가 후토시가 된다.

큐슈섬 북부에 있는 키타큐슈시 코쿠라키타구에서 출생해 자랐고 야나가와시에서 살기도 했다.

다들 알다시피 키타큐슈시는 대마도와 비교적 가까이 있다.

후토시 마쯔나가의 일본 이름 즉 본명은 마쯔나가 후토시가 되고 마쯔나가 후토시를 한국식 한자로 읽으면 松永 太 “송영 태”이다.

송영 태의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를 야쿠자라고도 주장한걸 보면 재일교포 2세일 수도 있어 보이는데 난 일본어를 한 개도 모르고 이걸 영어 글을 보고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송영 태가 한민족인지 아니면 한민족처럼 보이는 한자식 이름이 우연인지 난 모르겠다.

니들이 최우선적으로 알아야 할건 송영 태가 범행을 저질렀지 “일본인”이 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반드시 대가리에 세기길 바란다.

모든 한국 남자들이 우범곤, 유영철, 조두순이 아니고 모든 한국 여자들이 고유정, 인천 동춘동 초등생 살인 사건 범인이 아니듯이 송영 태가 범행을 저질럿지 모든 일본인이 키타큐슈 납치 감금 살인 사건을 저지르지 않았단 걸 조선인들은 대가리에 세뇌하길 바램.
20여명을 살해한 유영철, 2011년 노르웨이국 앤더스 브레빅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전 대량 살인 세계 랭킹 1위였던 62명을 살해한 우범곤이의 희생자들을 유영철과 우범곤이가 살해했지 모든 한국인이 저들의 희생자들을 살해한게 아니듯 대마도와 가까운 키타큐슈시에서 출생하고 자란 송영 태, 일본식으론 마쯔나가 후토시가 저런 범행을 저지른거지 모든 일본인이 저런 범행을 저지른게 아니란 걸 반드시 조선인들이 알아 처먹길 희망한다.

일단 알려진 후토시 마쯔나가의 자식들은 최소 3명인데 후토시 마쯔나가가 결혼 생활 중에도 최소 10명 이상의 여자들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고 돈도 많았기 때문에 후토시 마쯔나가의 자식들이 3명 이상일 가능성도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글만 봐선 후토시 마쯔나가는 전형적인 싸이코패스로 보이는데 한국에선 저 송영 태 같은 애를 “나쁜 남자”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나쁜 남자”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나쁜 여자”가 많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 끼리 끌린다.

나쁜 남자(싸이코패스)를 좋아하는 여자도 나쁜 여자(싸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쁜 남자 후토시 마쯔나가의 저런 종족번식 방법으로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은 어떤 민족이 번식했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고 난 생각한다.

 

아랜 위 글보다 약간 더 긴 글이고 단어를 가능한 순화시키고 내용을 삭제한다고 했는데 충분치 못한 부분도 많을 끼다.

 

일단 후토시 마쯔나가는 레이코 오가타, 준코 오가타 그리고 저 자매들의 어머니인 시즈미 오가타와 모두 성적인 접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돈도 많고 말도 잘해 항상 주변엔 여러 여자들이 있었고 후토시 마쯔나가의 희생자중엔 그가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인 희생자는 밝혀진 희생자가 없고 그의 희생자들은 모두 남들을 시켜 살해했다.

송영 태 松永 太 (일본식으론 마쯔나가 후토시)가 만일 조선국적자라면 공부 잘하고 돈 많고 머리도 좋아 언변이 좋은 나쁜남자로 아마 조선민족에겐 성공한 남자, 지도자, 호걸, 엘리트, 리더, 뇌섹남, 지식인등이라 불리며 현재 각종 방송에 출연해 여러 여자들을 거느리고 매우 잘 살아가고 있을 끼라고 난 확신한다.

내가 니들처럼 거짓말, 구라, 이간질, 협잡질등 싸이코패스질을 밥 먹듯이 잘하면 좋겠는데 친애빈지 아닌지는 모르것는데 애비라 불리는 늙은 양아치놈이 거짓말을 말그대로 밥처먹듯 한 놈이라 난.

이거 나도 쿠미오 토라야 처럼 조선민족에게 약점 잡혀 조선민족에게 전기고문 당해 뒈질 가능성이 높다 싶어 그만 하는게 내 한테 낳겠다.

아니 내보고 뭐 조선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 같은 개미친 황당한 거짓말이라도 하란 말이냐?

아랫 글은 또 다른 글의 번역이고 물론 번역은 당연히 전부 내가 했다.

 

송영 태

후토시 마쯔나가

1961년 출생.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매우 잘했고(excelling) 특히 언변이 매우 뛰어났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지만 고등학생때 여자 중학생과 부적절한 성접촉을 한게 밝혀져 남자고등학교로 전학 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았으나 저 사업을 이불 판매업으로 업종을 바꿨고 사기 쳐가며 이불을 팔았다.

1980년 한 여자와 결혼해 아들 1명을 뒀지만 이혼했다.

송영 태의 첫번째 부인은 송영 태의 가정폭력이 갈수록 심해져 이혼했다고 주장했다.

송영 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송영 태는 과묵하지만 언변이 좋고 사업수완도 좋은 점잖은 사람으로 주변에 알려졌지만 그를 좀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시기심이 많고 항상 화가나 있으며 충동적이고 주변의 이목 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나 여자들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했다.

송영 태는 단지 취미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한 여자에게 자기가 밴드소속이라 말했고 저 말을 한 후 저 여자와 사귈 동안 실제로 전문 음악 악기들을 구입해 정기적으로 합주를 하며 연습했고 큰 강당을 빌려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송영 태가 개최한 음악회엔 그의 첫번째 부인뿐만 아니라 준코 오가타도 참석했었다.

물론 송영 태는 키도 못 맞춰 노래를 부르는 애라 그의 음악회는 형편없었다.

송영 태는 종교적으로도 심취해서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메시아라 주장하기도 했다.

송영 태는 이불을 사러 온 사람 중 돈이 없는 사람에게 니 요즘 장사 안되지 니 한테 귀신이 달라붙어 있는게 보여라 말하며 귀신을 퇴치해 줄테니 자기 이불 회사에서 무보수로 일을 시키기도 했다.

자신이 메시아라 주장하는 송영 태의 이불회사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게 된 송영 태가 귀신이 붙었다 주장한 사람들은 이불 회사에서 생활하며 폭행, 전기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송영 태는 저 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호화로운 파티를 열며 생활했다.

 

준코 오가타

준코 오가타

1982년 준코 오가타는 유치원 선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으로 일할 때 한날 자기 아버지가 조직폭력배인 한 아이가 놀다가 가벼운 부상을 입는데 저 아이의 조직폭력회사 직원 아버지는 준코 오가타와 준코 오가타가 일하고 있던 유치원을 협박한다.

준코 오가타는 송영 태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조직 폭력회사 직원의 협박은 멈춘다.

저 때부터 둘이 사귀기 시작했는데 당시 송영 태는 다른 여자랑 결혼을 한 상태였다.

준코 오가타는 1962년 2월 태어났고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에 남자친구를 많이 사귄적이 없고 송영 태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와 성관계는 한적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이들을 매우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송영 태와의 사이에 남자 아이 2명을 출산했다.

송영 태는 처음엔 준코 오가타를 잘 대해주다 준코 오가타가 다른 남자와 사귄적이 있다고 말한 후 준코 오가타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준코 오가타

송영 태는 준코 오가타에게 니가 쓴 일기장을 들고 오라 말했고 송영 태는 그 일기장을 보면서 준코 오가타의 과거를 캐물으며 폭행했다.

저 후 송영 태는 준코 오가타가 자기 것이란 뜻으로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 담배빵을 하고 그녀의 오른쪽 허벅지에도 松永 太(마쯔나가 후토시)란 문신을 세기고 준코 오가타가 다른 남자들이랑 연락을 하는 걸 일체 금지시켰다.

송영 태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준코 오가타는 유치원에서 실신을 하기도 했고 결국엔 자기 부모집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준코 오가타의 자살 시도는 오히려 송영 태의 화를 돋궈 송영 태는 자살을 시도한 준코 오가타를 더 심하게 구타했고 준코 오가타는 결국 유치원 선생일을 그만뒀다.

준코 오가타의 어머니 시즈미 오가타는 송영 태가 지가 말한대로 실제로 자기의 현재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기 딸과 결혼을 할 것인지 의심하며 준코 오가타가 송영 태와 교제하는 걸 반대했다.

 

한날 송영 태는 시즈미 오가타에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며 한 호텔로 부른다.

송영 태는 시즈미 오가타가 호텔로 오자 그녀와 성관계를 했고 저 후 송영 태와 시즈미 오가타는 정기적으로 만나 성관계를 했다.

저때쯤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 레이코 오가타는 농업에 종사하는 카즈야와 1986년 결혼을 하기로 돼있었다.

준코 오가타의 아버지 타카시게 오가타는 송영 태와 자기 딸 준코 오가타가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을 전혀 도와주지 않자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 레이코 오가타를 1986년 농업에 종사하는 카즈야와 정략결혼 시킨다.

 

유치원 선생일을 그만둔 준코 오가타는 송영 태의 이불회사에서 그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구매자들의 신용카드를 과다하게 끊는 수법등으로 사기를 계속 치고 저들이 사기를 친걸 알아 챈 사람들에겐 송영 태는 자기가 야쿠자라고 협박했다.

말이 없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준코 오가타는 이불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항상 화가나 있고 고함을 지르는 성격으로 변한다.

 

첫번째 범행

1993년 송영 태는 자식 3명이 있는 또 다른 여자 동창을 만나고 그녀에게 준코 오가타는 자신의 여동생이라 말한다.

송영 태는 여자 동창에게 니랑 결혼할 테니 남편과 이혼하라 말하고 저 여자는 실제로 이혼한다.

이혼 한 저 여자의 자식 3명중 큰 아이들 2명은 남편이 데려가고 갓난 여자 아이 1명은 저 여자가 데려 갔다.

저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갓난 여자 아이의 양육비를 요구했다.

1993년 말 저 여자의 1살짜리 여아가 사망하는데 1살짜리 여아의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지만 사인불명으로 처리됐다.

1994년 저 여자 역시 사망하고 자살로 처리됐다.

송영 태는 체포된 후 1994년 자살한 저 여자를 고문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가 죽이지 않았으며1993년 사망한 1살짜리 여자 아이의 죽음과도 자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 주장했다.

저 후 송영 태는 한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던 자기 친구 쿠미오 토라야가 자기에게 비밀을 털어 놓자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쿠미오 토라야는 자기의 친딸을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자기가 일하던 부동산 회사에서 돈을 훔치거나 한적이 있다고 송영 태에게 털어 놨고 송영 태는 저걸 약점으로 잡아 쿠미오 토라야를 학대, 고문, 이용한다.

1994년 쿠리야 토라야는 자기 딸과 함께 송영 태의 집에서 살게 되고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쿠미오 토라야를 110볼트 전기로 여러 차례 감전 시키거나 구타 그리고 자기의 똥을 먹게 하거나 시켰고 저런 고문 장면들을 쿠미오 토라야의 딸이 지켜보기도 했다.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체포된 후 쿠미오 토라야의 딸은 자기 아버지는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에게 고문을 당할 동안 한번도 저항을 하지 않았고 자기를 고문하던 당시 임신중이던 준코 오가타에게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란다는 말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110볼트 전기로 여러 차례 감전 당하는 등 장기간 고문으로 쿠미오 토라야는 1996년 2월 3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라야의 딸은 송영 태가 아버지를 이빨로 깨물게 시키는 등 자기를 아버지의 고문에 가담 시켰으며 송영 태가 저 장면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말했다.

쿠미오 토라야가 죽은 후 그의 시체는 완전히 분해돼 토라야의 딸과 준코 오가타가 바다에 버렸고 송영 태는 당시 11살이던 토라야의 딸에게 니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문서를 자필로 쓰게 했다.

쿠미오 토라야가 사망할 때쯤 송영 태는 쿠미오 토라야의 친구 던 한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고 육체관계도 맺었다.

저 여자는 한날 자기의 3살짜리 여자 아이와 함께 송영 태의 집에 갔는데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저 여자를 감금한 후 저 여자뿐만 아니라 저 여자의 3살짜리 딸도 고문했고 저 여자는 자기의 돈을 모두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에게 뺏겼다.

저 여자는 1997년 3월 창을 뛰어 넘어 탈출했고 그 후 저 여자는 정신병원에 3살짜리 여아는 저 여자의 전 남편에게 맡겨 졌다.

 

오가타 가족 살인

호화로운 삶을 살던 송영 태는 쿠미오 토라야가 죽은 후 돈이 부족해지자 준코 오가타에게 니 가족과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라 시키지만 준코 오가타의 친구와 가족들이 돈을 주지 않아 저 후 준코 오가타는 오이타시 근방에 있는 유후인 마을의 한 술집에서 접대부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한날 접대부로 일하던 준코 오가타가 사라진다.

준코 오가타가 사라지자 송영 태는 시즈미 오가타에게 연락을 취하고 시즈미 오가타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송영 태에게 말해 준다.

송영 태는 타카시게 오가타, 시즈미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를 자기 집으로 부른다.

오가타 가족들은 언제 인지는 불명확 하나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쿠미오 토라야를 고문으로 살해한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고 만일 사라진 준코 오가타가 쿠미오 토라야 사망 사건을 외부로 알려 버리면 준코 오가타 때문에 자기들도 얼굴에 먹칠을 당할 까봐 송영 태의 준코 오가타를 돌아오게 만드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송영 태와 오가타 가족들은 준코 오가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송영 태가 죽은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 장례식도 치른다.

송영 태가 죽었단 소식을 들은 준코 오가타는 자기 집으로 돌아 가지만 가족에게 잡힌다.

저 후 송영 태는 오가타 가족들과 술을 마시며 친하게 지내게 되는데 오가타 가족들은 송영 태와의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자기들의 개인적인 문제나 속마음을 털어 놓고 송영 태는 술자리에서 들은 말들로 오가타 가족들을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한날 송영 태는 타카시게 오가타에게 쿠미오 토라야가 고문으로 사망한 욕실의 배관을 교체하게 만들고 타카시게 오가타에게 그 욕실에서 쿠미오 토라야가 죽었고 니가 배관을 교체해 증거를 인멸했으므로 니도 공범이라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저 후 준코 오가타는 다시 도망쳐 시모노세키시로 갔지만 한날 그곳에서 송영 태의 또 다른 첩에게 편지를 쓰고 준코 오가타의 편지를 받은 송영 태의 첩은 송영 태에게 준코 오가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줬고 송영 태는 쿠미오 토라야의 딸에게 준코 오가타를 미행시킨다.

토라야의 딸이 자기를 미행한다는 걸 알아챈 준코 오가타는 기차역에서 도망을 쳐 택시에 타지만 토라야의 딸이 쫏아가 택시를 막아 세우고 송영 태에게 전화를 건다.

준코 오가타는 다시 도망쳐 기차에 타나 토라야의 딸이 계속 쫏아가 같은 기차에 탄 뒤 송영 태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 주고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기차역엔 송영 태가 준코 오가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후 준코 오가타는 松永 太(마쯔나가 후토시)로부터 도망치는 걸 아예 포기한다.

준코 오가타

준코 오가타는 체포된 후 교도소에서 당시 기차에서 토라야의 딸이 자기를 미행했을 때 송영 태로부터 도망을 치려한 게 아니라 후지산에 있는 자살 장소로 유명한 아오키가하라 숲으로 가서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라 주장했다.

송영 태는 레이코 오가타의 남편이자 오가타 가족의 데릴사위인 카즈야 오가타에게 레이코 오가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고 이혼을 생각 중이며 이전에 아이를 낙태 했다는 말을 하는데 카즈야는 송영 태의 말이 거짓이라 의심을 하는게 아니라 저런 말을 한 송영 태를 오히려 더 믿는다.

松永 太(마쯔나가 후토시)는 카즈야 오가타 역시 타카시게 오가타와 마찬가지로 쿠미오 토라야가 고문으로 죽은 욕실의 타일을 교체시키게 하고 타카시게 오가타와 마찬가지로 니도 증거인멸에 가담한 공범이라며 카즈야 오가타의 입을 막는다.

앞서 적었지만 오가타가족들은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쿠미오 토라야를 장기간 고문으로 죽였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었다.

1997년 11월 폴리스는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를 사기 혐의로 수배한다.

송영 태 / 준코 오가타

폴리스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린 송영 태는 오가타 가족을 한 작은 연립주택에 모두 모이게 하고 외부 출입을 금지시킨다.

당시 폴리스가 수배령 내려 외부와의 출입을 단절한체 작은 연립주택에 있던 애들은 송영 태, 준코 오가타, 시즈미 오가타, 타카시게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 카즈야 오가타 그리고 레이코 부부의 자식들인 10살 아야 오가타, 5살 유키 오가타등 총 8명이고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저 가족들을 전부 이간질, 회유하는 방법으로 차례차례 죽인다.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범행을 저지른 집은 위 지도 근방의 한 아파트(연립주택)다.

타카시게 오가타가 친척들의 반대로 자기 부친의 땅을 팔아 치우는데 실패하자 송영 태는 땅을 팔아 돈을 자기에게 주지 못한 책임을 물어 타카시게 오가타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어느 날 준코 오가타는 자기 아버지 타카시게 오가타를 110볼트로 심하게 고문했고 타카시게 오가타는 혼수 상태에 빠진 후 사망했다.

타카시게 오가타가 죽자 송영 태는 이전에 타카시게 오가타와 싸운 후 할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적 있는 10살 아야 오가타에게 니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니 할아버지가 죽은 것이라며 10살 아야 오가타에게 타카시게 오가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타카시게 오가타가 죽자 송영 태와 오가타 가족은 타카시게 오가타의 시체를 삶는등 완전히 분해시켜 공공화장실이나 바다에 조금씩 내다버렸다.

1998년 1월 계속된 전기 고문으로 시즈미 오가타의 정신이 쇠약해져 시즈미 오가타가 미친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송영 태는 가족회의를 주최한다.

가족회의에서 시즈미 오가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나 송영 태가 허락하지 않고 준코 오가타는 정신이 나간 시즈미 오가타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범죄행위를 말 할 수 있다며 시즈미 오가타를 죽여야만 한다고 제안한다.

결국 준코 오가타의 의견으로 준코와 레이코가 시즈미 오가타를 제압한 상태에서 카즈야 오가타가 시즈미 오가타를 교살한다.

레이코 오가타와 송영 태는 송영 태가 고등학생 레이코 오가타가 14살 중학생일 때 이미 성관계를 한적이 있었고 성인이 돼 다시 만난 후로도 계속해서 다른 가족들은 모르게 성관계를 해오고 있었다.

시즈미 오가타가 살해당할 무렵 레이코 오가타의 월경이 멈추자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레이코 오가타가 송영 태의 아이를 임신했을 것이라 의심하고 준코 오가타는 낙태를 시키기 위해 자기 여동생 레이코 오가타도 110볼트 전기 고문을 시작하고 송영 태도 나머지 사람들에게 레이코 오가타가 미쳤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계속된 전기고문으로 레이코 오가타의 귀가 멀자 松永 太(마쯔나가 후토시)는 가족회의를 열어 레이코 오가타가 귀도 멀고 제정신이 아니니 저런 상태로 살아 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란 말을 하고 레이코 오가타의 남편 카즈야 오가타는 자원해서 자기가 레이코 오가타를 죽이겠다 말한다.

카즈야 오가타는 당시 10살이던 딸 아야 오가타에게 레이코 오가타를 붙들고 있게 시킨 후 레이코 오가타를 교살한다.

카즈야 오가타도 계속된 고문으로 내장에 문제가 있었고 음식을 토하기도 했다.

카즈야 오가타의 구토증세가 심해지자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카즈야 오가타를 변소에 가뒀고 카즈야 오가타는 변소에서 죽었다.

성인들이 모두 죽고 10살 아야와 5살 유키만 남자 쿠미오 토라야의 딸이 와서 아야와 유키를 돌보기 시작했다.

카즈야 오가타가 죽고 한 달 후쯤 송영 태는 “저 애들이 크면 우리에게 복수할 거야”란 말을 준코 오가타에게 한다.

한날 아야 오가타가 송영 태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자기 집으로 보내달라 말하자 송영 태는 “니 동생이 안스럽지 않냐, 동생을 엄마곁으로 보내 줘야 하지 않겠냐?”라 말한 후 준코, 아야, 유키에게 유키 니는 엄마를 보러 가게 될것이라 말한 후 부엌에서 유키 오가타를 교살시킨다.

1998년 6월 송영 태는 아야 오가타에 대한 학대 강도를 올리던 도중 준코 오가타에게 아야 오가타가 너무 뚱뚱해지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음식을 줄여서 줘라 말하고 저 말을 들은 준코 오가타는 송영 태가 조만간 아야 오가타를 살해할 것이란 걸 알아 차리고 토리야의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 준다.

준코 오가타는 송영 태에게 아야 오가타가 죽고 싶단 말을 했다 말하고 송영 태는 아야 오가타에게 저런 말을 했는지 물어본다.

아야 오가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토리야의 딸과 준코 오가타가 전선으로 아야 오가타를 교살한다.

2002년 1월 토리야의 딸은 7년만에 탈출해 자기의 조부모 집으로 가서 조부모에게서 돈도 구하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하지만 토리야의 딸은 자기 조부모들에게 무슨 일을 격었는지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송영 태는 쿠미오 토리야의 누나를 찾아가 토리야의 딸인 조카를 봤느냐 묻고 토리야의 누나는 자기의 조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준다.

송영 태는 토리야 딸의 조부모 집으로 찾아가 토리야의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서 돈을 훔쳤고 마약을 복용하니 그 애를 자기 아버지에게 데려가야 한다 말했고 조부모는 자기들의 손녀를 송영 태에게 넘겨준다.

토리야의 딸은 송영 태에게 끌려 가기전 메모지에 “그 남자의 말은 전부다 거짓말이다. 제발 나를 데리러 와라”란 글을 적어 놨다.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토리야의 딸에게 110 볼트 전기 고문과 발톱들을 모두 뺀찌로 뽑았고 두번 다신 도망치지 않겠다는 혈서를 자기의 피로 쓰게 했다.

 

체포

2002년 3월 토리야 딸은 다시 도망쳐 조부모 집으로 갔고 저 땐 폴리스에게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한다.

쿠미오 토리야의 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폴리스는 다음날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를 체포했다.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 사이에서 출생한 2명의 남아들과 한 여자가 맡겨 놓은 쌍둥이들은 키타큐슈시에 있는 다른 연립주택에서 발견됐다.

폴리스는 처음엔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 저들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준코 오가타의 졸업 앨범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신원을 파악했다.

이 사건은 최초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가 쿠미오 토리야의 딸을 납치 감금한 사건으로만 수사가 시작됐지만 수사를 하면서 여죄가 드러나고 준코 오가타도 폴리스의 수사에 협조해 나머지 사건들도 수사가 진행됐다.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에게 살해당한 밝혀진 사람들

쿠미오 토라야 (송영 태 친구 1996년)
타카시게 오가타 (준코 오가타 아버지 1997년 12월)
시즈미 오가타 (준코 오가타 어머니 1998년 1월)
레이코 오가타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 1998년)
카즈야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남편 1998년 4월)
유키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아들 1998년)
아야 오가타 (레이코 오가타의 딸 1998년 6월)

등 희생자들의 시체 모두 분해되거나 바다에 버려졌고 쿠미오 토라야가 살해된 욕실도 배관과 타일이 교체되 폴리스는 별다른 물증을 건지지 못해 토라야의 딸과 준코 오가타의 진술에만 의존해 대부분의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토라야의 딸의 혈서와 정황증거로 송영 태와 준코 오가타는 유죄를 받았고 둘다 처음엔 교수형을 받았지만 준코 오가타는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준코 오가타는 나중에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송영 태의 지배 아래 우리 가족들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밥도 제때 먹고 샤워도 할 수 있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책도 볼 수 있었다라 말했다.

 

송영 태

송영 태 松永 太(마쯔나가 후토시)의 타인 교육 방법

송영 태는 학창 시절 공부를 특출나게(Excelling) 잘하기도 했지만 말재주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쿠미오 토라야, 오가타가족 중 송영 태가 직접 자기 손으로 살해한 사람은 1명도 없다.

송영 태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과묵하지만 언변과 사업 수완이 좋고 예절과 격식을 차리는 점잖은 사람으로 알려 졌지만 그를 좀 아는 사람들은 송영 태를 욱하는 성격에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송영 태는 희생자를 물색해 그들과 연락을 취하며 친해지고 믿음을 얻은 후 희생자들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 약점을 이용하거나 여자들 같은 경우는 재력을 과시한 후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 전기고문과 협박으로 돈을 갈취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송영 태에게 약점을 잡힌 희생자들 중엔 송영 태의 이불회사에서 110볼트 전기 고문을 당하며 무보수로 일을 한 사람들도 있다.

송영 태에게 약점을 잡힌 사람들이 왜 저항을 하지 않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송영 태에게 자기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말한 사람들은 송영 태가 그들을 고문하며 그들에게 니들의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 세뇌 또는 교육시켰을 수도 있고 송영 태에게 수천 수억을 갈취당한 여러 여자들 같은 경우는 일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아는 게 전혀 없어 모르겠는데 송영 태가 돈이 많고 말솜씨도 좋아 넘어 간 후엔 돈도 뺏기고 주기적으로 전기 고문을 당하며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송영 태는 110볼트 전기로 희생자들의 손, 팔, 허벅지, 유두, 입술, 귀, 생식기등을 고문했고 희생자들 중엔 전기 고문을 당하다 기절을 한 사람들도 많다.

송영 태는 오가타가족들과 같이 살았을 때 상위 계급자가 하위 계급자를 전기 고문하는 식으로 계급을 나눴고 송영 태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계급을 강등시켰다.

오가타 가족들은 계급이 강등돼 상위 계급자에게 고문당하지 않기 위해 송영 태의 지시를 잘 따랐던 것으로 보이며 계급에 따라 송영 태의 지시로 서로가 서로를 고문하면서 정신과 몸 상태도 악화되고 송영 태에 대한 저항 의지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적었다시피 폴리스가 입증하지 못한 1993년 사망한 유아와 자살 처리된 저 유아의 어머니를 제외하면 송영 태가 자기 손으로 살해한 희생자는 한 명도 없는데 송영 태는 자기의 지시로 희생자가 또 다른 희생자를 살해하면 희생자를 살해 한 사람에게 니가 누가 누구를 고문해 살해했다는 문서를 쓰게 했고 저것도 오가타 가족들이 송영 태의 범죄를 외부에 알리거나 송영 태에게서 도망을 치지 못한 한 요인일 수도 있다.

송영 태는 오가타 가족들과 같이 생활할 때 오가타 가족들의 여자들은 반나체 상태로 지내게 했고 수면 시간과 방법, 그리고 먹는 음식도 통제했다.

송영 태는 초기엔 돈을 갈취하기 위해 전기고문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희생자들이 돈을 마련해오지 못하면 그냥 전기고문으로 살해한 후 시체를 완전히 분해시켜 공공변소나 바다에 던진 것으로 보인다.

송영 태는 재판 내내 희생자들은 자기의 돈줄이었으므로 희생자들을 죽일 이유도 죽인적도 없으며 모두 준코 오가타가 주도해 살해한 것이라 주장했다.

송영 태의 주도하에 범죄 행위가 일어날 때 식인이 일어났다는데 저 식인에 관한 부분은 난 못 찾겠고 송영 태가 대마도와 가까운 키타큐슈시에서 태어 났고 자기가 야쿠자라 주장하고 이름도 한자식으로 바꾸면 송영 태라 재일교포 2세일 가능성이 있어 보여 송영 태의 아버지 이름을 찾아봤는데 당연히 없네.

이 글은 일본어로 된 글을 보고 적은 영어권 애의 글을 내가 다시 조선말로 바꾼 것이라 내용이 부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알다시피 영어권 애가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본어로 된 글을 영어권 애가 읽고 이해하는건 더더더더욱 어렵다.

다들 알겠지만 타국의 언어를 말로 할 줄 안다는 것과 타국 언어로 된 글을 읽을 줄 아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르다.

난 일본어를 전혀 모르므로 저 영어권 애가 일본어 글을 보고 영어로 쓴 걸 내가 보고 여기 갈겼다고.

이 송영 태 사건을 제대로 쓸려면 일본어를 알아야 하는데 내가 일본어를 하지메마시떼, 라멘 구다사이등 몇 개 밖에 몰라. 나 일본어 한 개도 몰라 히라가나 정도나 외우고 있어. 나 존나게 게을러서 외우는거도 싫고 니들 보다시피 대갈통도 개존나게 나빠가 외우지도 못해.

히라가나 카타카나가 영어 ABCD나 같은 긴데 저거 외운다고 뭐 쓰잘떼기 있냐 카타카나는 절반도 못 외우것드라.

이 송영 태 사건이 조선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전기고문에 발톱 다 뽑힌 17살 짜리의 말을 듣고 미친여자라 생각하지 않고 조사하는 척이라도 했을까?

이런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송영 태 사건이 엽기?라고 해야 되냐 그리 보일 수도 있것는데 이런 사건 많다.

이런 사건은 잘 보도도 안 될 뿐더러 윗 글에 보이다 시피 17살 짜리가 폴리스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면 송영 태가 거짓말을 아주 잘하고 시체도 없으니 살인은 그냥 없는 사건이 되는 것이고 송영 태가 만일 체포됐다면 사기건으로만 송영 태가 조사를 받았겠네.

일단 2002년 당시 17살짜리가 재탈출에 실패를 했다면 아마 송영태와 준코 오가타는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겠냐?

탈출한 17살짜리가 일본 폴리스에게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 폴리스가 발톱 다 뽑히고 110볼트 전기 고문당해 상태 메롱 일테인 17살짜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물증은 거의 없고 전기고문을 당한 준코 오가타와 쿠미오 토리야 딸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가 진행됐으니 실제로 일어난 일들과 다른 부분도 더러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송영 태(마쯔나가 후토시)

추가 내용

송영 태는 일본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게 아니라 부유층가정에서 자랐다.

송영 태는 국내로 치면 초등학교때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를 받았다.

중1때 교내 웅변대회에서 중학교 고학년들을 체치고 웅변대회 우승을 했다고 하고 저것과 관련해 송영 태의 언변이 좋았다고 영어 글에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송영 태는 어릴 때부터 어려 명의 여자들과 성관계를 했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최소 10명 이상의 애인이 있었고 부인도 저걸 알고 처음엔 따졌지만 포기했다고 한다.

송영 태와 첫째 부인이 이혼한 이유는 송영 태의 문란한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공식적인 이혼 사유는 송영 태의 폭행때문이다.

송영 태의 공범인 준코 오가타의 아버지 타카시게 오가타는 1936년생으로 마을 의원을 맡는등 지역 유지.

송영 태는 1961년생 준코 오가타는 1962년 2월생이나 학교 다닐때 같은 학년이었다.

준코 오가타의 여동생 레이코 오가타는 1965년 1월 태어난 치과 위생사로 언니 준코 오가타와는 다르게 여러 남자와 노는 걸 좋아했고 카즈야 오가타와 결혼하기 전에 낙태를 한적 있고 카즈야 오가타와 결혼한 후에도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했다.

카즈야 오가타는 1959년 4월생으로 치바현 폴리스로 일하다 타카시게 오가타가 간부로 있던 농협에 취직 후 1986년 데릴사위 형태로 레이코 오가타와 결혼했다.

1939년생 시즈미 오가타는 자기 딸이 부인이 있음에도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고 다닌다는 송영 태와 만나고 다니자 반대를 하던 중 1984년 가을 송영 태는 시즈미 오가타를 한 러브 호텔로 불러 냈는데 저 러브 호텔에서 당시 44살이던 시즈미 오가타와 23살이던 송영 태가 성관계를 했고 그 후로도 자주 성관계를 했다.

저때 송영 태가 시즈미 오가타를 성폭행했단 주장은 준코 오가타의 주장한 것이고 조사원도 준코 오가타의 강간설을 취했지만 일부에선 시즈미 오가타와 송영 태가 합의를 하고 성관계를 한것이고 시즈미 오가타와 송영 태 사이가 결국 주변에도 퍼져있었다고 한다.

시즈미 오가타가 1998년 1월 사망했으니 시즈미 오가타와 송영 태는 거의 14년간 성관계를 한게 된다.

레이코 오가타는 카즈야와 결혼 전 사귀는 다른 사람이 있었지만 부모의 권유로 카즈야와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는 다른 남자들과도 성관계를 했다.

준코 오가타는 송영 태와 레이코 오가타는 1997년 4월부터 성관계를 했다고 하나 저 둘은 이미 송영 태가 고3 레이코 오가타가 14살 일 때 한 축제장에서 만나 한 호텔에서 성관계를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송영 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준코 오가타를 다시 만났을 때 초기엔 레이코 오가타가 준코 오가타의 여자동생인 줄 몰랐었다고 하고 레이코 오가타가 먼저 다시 송영 태에게 육체접근을 했다고 한다.

레이코 오가타는 송영 태와 술을 마실 때 자기가 결혼전 낙태를 한적 있고 결혼 후에도 여러 남자들과 만났다는 걸 송영 태에게 말했고 저 말을 들은 송영 태는 레이코 오가타의 남편인 카즈야 오가타에게 말했다.

타카시게 오가타는 1997년 12월 21일 사망했고 저 후 타카시게 오가타의 시체를 분해했는데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잔치를 하고 레이코 오가타의 아들인 유키 오가타의 생일날 생일 잔치도 했다고 한다.

송영 태는 상대방의 비밀 이용, 고문, 희생자들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함, 식사 배설 잠 외출 의복 통제등으로 희생자들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희생자들을 계급으로 나눠 송영 태 자기의 말을 잘 듣는 희생자들은 고위 계급 말을 안 듣는 애는 하위 계급으로 분류 시켜 상위 계급자가 하위 계급자를 고문하는 방식으로 희생자들끼리 위계 질서를 갖게 하고 희생자들은 하위 계급으로 강등되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며 송영 태의 말에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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